예수님의 족보

2012. 3. 15. 오전 8:05:26

글자

 


예수님의 족보에 관한 것


2012-03-14
Q: 예수님의 족보에 관한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에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바빌론 유배까지가 14대, 바빌론 유배후 예수까지가 14대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42대가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세어 보아도 예수님은 41대로 나옵니다.
어떻게 계산하는 방법이 다른가요?

A: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의 직역: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또는,'혈통', '기원')의 책." "탄생"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 게네시스는 구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를 뜻하기도 한다.
마태오는 이러한 첫 문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아담의 자리를 차지하신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족보는 예수님의 후손이 아니라 선조들에 관한 것으로, 이는 이 선조들로 대표되는,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가 예수님에게서 그 의미를 얻게 됨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일부 사람들에게 '다윗의 자손' 으로 인정을 받으신 것 같다(마르10,47-48; 11,10과   사도들의 설교에서 (사도 2,29-32; 13,22-23), 그리고 매우 오래된 신앙 고백에서도 그분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선포되신다 (로마 1,3-4).마태 1,1-17과 루카 복음서의 이 족보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심을 보여 주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메시아적 정당성의 바탕이 된다.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를 전하면서도, 둘 다 요셉의 족보를 말한다.
구약 성경에서는 남자 쪽으로만 족보가 작성되기 때문이다.이 두 족보는 당시의 족보들이 자주 그러하듯,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상당히 인위적이다.
그 가운데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의 조상, 유배뒤의 즈루빠벨과 스알티엘, 그리고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관련해서만 일치한다.
마태오는 아브라함에게서 예수님까지 유다 왕국의 임금들을 거치면서 3x14(= 42) 대(代)로 제시한다.
반면에 루카는 아담에게서 예수님까지 임금은 다윗만 포함시키면서 11x7(=77)대로 계산한다. 또 루카는 예수님의 족보를 자기 복음서의 첫머리에 배치하는 마태오와는 달리,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말한 다음에야(1,35; 3,22) 비로소 그분의 인간적 혈통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는 온 인류와의 관계를 강조하려고(사도17,26.31)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면서 다윗과 스알티엘 사이에 임금은 하나도 거명하지 않고 예언자들의 이름만 집어넣는다.
당시의 메시아사상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4,6 참조) 이상은 주석성경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
마태오의 복음서 2장에서는 예수님 탄생후 천사의 지시로 이집트로 피난한후 헤로데 사망후 갈릴레아 나자렛으로 돌아왔다라고 하였음.
루가복음2장에서는 예수님 탄생후 정결례를 거행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에 봉헌했다. 라고 하는데
예수님 이집트 피난과 예루살렘 봉헌시기와의 시기적인 차이는 어떻게 이해를 하여야 하나요? 이점 궁금합니다. 답변좀주세요. 오형균그레고리오.

A: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성경은 예수님의 전기를 쓴 책이 아님을 이해하시는 것이 우선 일 것입니다. 주석성경 입문을 공부하시면 이해하시는데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아직 초 신자이시라면 혼자서 공부하시고 이해하시는데 어려움이 크실 것입니다. 그러시면 평화방송 인터넷 다시 보기로 최승정 신부님의 성서 백주간 강의를 시청해 보시길 권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누구를 상대로 썼느냐를 먼저 아셔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청중은 유다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구약의 요셉성조가 꿈을 꾸고 그 꿈 때문에 이집트로 팔려 갔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자신의 가문을 위기에서 구하는 의인이 되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할 때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이집트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구출해 내십니다. 이 사건을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아기가 바로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구해 주실 분이심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복음서는 자신이 예수님을 선포하자고 하는 공동체에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 주는데 고심한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세주가 이 세상에 태어나신 한 사건을 두고 성서 저자의 신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공동체가 가장 잘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썼다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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