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4 연중 제 8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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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
열매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말라죽게 만든 일은
복음서에서 가장 이치에 맞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다는 설명이 없더라도 그렇습니다.
나무에 열매가 없을 수도 있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유로 멀쩡한 나무를 말라죽게 하나?
그런데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 입성 사건과 성전 정화 사건 중간에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성전 정화 다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고,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하신 일이라고 짐작됩니다.
다시 말해서 괜히 무화과나무에게 분풀이를 하신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상징적이라는 것입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 있는 것 같고, 풍성한 것 같아도,
속으로는 병들어 있고, 메말라 있는 신앙생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일차적으로는 당시의 유대교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당시의 유대교는 열매가 하나도 없으면서도
열매가 많은 것처럼 속이고 있는 무화나무 같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무화과 철이 아니었다.' 라는 설명입니다.
무화과 철이 아니어서 열매가 없었던 것이니 나무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니 열매가 없다고 저주를 해서 말라죽게 한 것은
나무 입장에서는 분명히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상징으로 본다면, 그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는 계절이 따로 있지만, 신앙생활에는 제 철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항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제 때가 아니라고 따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안드레아 등을 제자로 부르실 때 그들은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하던 일을 중단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일이 덜 끝났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하느님께서 지금 부르시면, 지금 떠나야 합니다.
유언장을 쓸 수 있게 삼십 분만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한 시간만 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부르면 즉시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신앙인은 주일만 신앙인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주일 미사 참례는 '최소한'의 의무일 뿐입니다.
주일에만 신자이고, 성당에서만 신자인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정한 기도시간에만 기도를 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는 방학도, 휴가도, 휴일도 없습니다.
에이, 그래도 바캉스 철인데... 라고 따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깨어 있어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캉스 철만 제외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깨어 있어라, 가 아닙니다.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 회개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하느님께서 정하시는데, 인간들은 그게 언제인지를 모릅니다.
무화과나무에게는 열매 맺을 철이 따로 있지만,
인간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기 위한 회개의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지금'일 뿐입니다.
무화과나무 이야기 다음에 바로 성전 정화 사건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전 마당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활기가 가득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을 강도들의 소굴의 모습으로 판단하셨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모습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는 저주를 해서 말라죽게 하셨지만,
성전을 모독하는 인간들은 쫓아내버렸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고, 성전을 모독하는 인간들은
성전 안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 그것은 유대교라는 종교 자체를 두들겨 부순 일이 되기도 합니다.
탐욕과 이기심만 가득한 종교라면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는 땔감으로 쓸 수 있지만,
자격을 잃은 종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믿음'에 관한 가르침이 나오는데,
앞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하나의 주제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일이 대단한 기적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보다 더 놀라운 기적을 많이 행하셨고,
제자들은 그런 기적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앞의 무화과나무 이야기와 성전 정화 이야기와 연결해서 생각한다면,
하느님 나라 건설에 꼭 필요한 것은 올바른 믿음이라고 가르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를 부수어버리고, 하느님 나라(그리스도교)를 새로 건설하는 일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산을 바다에 빠뜨리는 것처럼
엄청나고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겠지만,
그래도 올바른 믿음을 갖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뜻으로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도 없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도 하지 않고
자기 잘난 체만 하는 인간들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런 나무 같은 인간들은 말라죽을 것입니다.
아니, 그 전에 먼저 예수님께서 쫓아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실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유대인들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었다면
성전에서 장사를 하면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이 오직 이기심과 탐욕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니
성전에서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종교를 사유화하고, 세속화시키고,
타락시키는 종교인들(신앙인들)에게 주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도둑질을 하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리사욕이나 채우는 자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