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7개의 비유를 통하여 하늘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작은 씨앗입니다. 하지만 자랍니다. 자라면서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됩니다.
그리고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말씀을 통해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주십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비교하고 값을 매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교해서 가능성을 내다보고, 안심하거나 불안해합니다.
앞섰다고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비교해서 작거나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주눅이 들고 누군가에게 탓을 돌립니다.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뒤쳐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칩니다. 비교와 경쟁! 아마도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생명은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충실합니다.
홀로 황량한 벌판에 있든지, 누구도 보지 않는 외로운 바위틈에 있든지, 수많은 초목들 사이에 있든지 상관없이,
자신의 생명에 충실합니다.
계곡이나 절벽 중간 바위에 올라 서 있는 소나무, 물이 너무 없어서 건조한 땅에 벅차게 뿌리내리며 피어나는 들꽃들,
보기 흉하게 자라지 않습니다. 아니 멋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안타깝게도 흉하게 성장합니다. 상처도 많고 불만도 많습니다.
열등감도 많고 그런가 하면 알량한 자존심도 있습니다.
넉넉한 어른으로 존경스럽게 늙은 사람들도 너무 드뭅니다. 심술과 탐욕이 보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절망의 어둠이 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신의 신세를 처량하게 생각했기에 아름답게 늙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비교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했기에, 오만의 기름이 흐릅니다.
비교와 경쟁은 발전을 가져오기 보다는, 사실 인간성을 파괴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비교와 경쟁 없이도 하루 종일 잘 뛰어다닙니다. 그 생명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비교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상품과 작품”에 대한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품은 나름대로 뜻을 품고 만든 것이라면,
상품은 값을 매겨 팔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느님은 상품을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비교는 작품까지 상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 자신은 누구와 비교되어 팔리는 상품이 아니라, 하느님의 작품이며, 하느님의 생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의 부모는 자식들을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다 다르기 때문이고, 또 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씨앗들이 되기 원하십니다.
누구를 이기기 위함도 아니요, 대접 받기 위함도 아닙니다.
상처 입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함이요,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되십시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에 충실 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전교구 민병섭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