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바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집

2011. 7. 13. 오후 6:56:34

글자
[민병섭 신부] 바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집
 
 
벌써 올해도 반이 지났습니다.
올 해의 후반을 시작하는 첫 주간은 한국 교회의 첫 사제이신 김 대건 신부님의 축일로 시작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시면서 “주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주님의 은혜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니, 주님의 제자라는 이름도 또한 귀하겠지만 실천이 없다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으로, 더구나 성모님의 군사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연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우리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옛 320조목 문답책에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느 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공경하고 있습니까?
한 방송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를 초대했습니다. 방청객들은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질문을 쏟아 냈지요. 성공한 사업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러한 예를 들어 말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죠. 어떤 지역에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금을 캐려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그곳으로 몰려갔죠. 근데 그곳에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에 큰 강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돌아서라도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저 같으면 수영을 해서 건너가겠습니다.” 등등……. 사람들이 이런 저런 방법을 제시하며 의견이 분분했지만 사업가는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은 왜 꼭 금만 캐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배를 한 척 사서 장사할 생각은 못하죠?
과도한 뱃삯을 요구한다 해도, 강만 건너면 금광이 있으니까, 다들 달라는 대로 줄 테니 태워만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고정된 관념에 사로잡혀 하느님은 성당에서만, 그것도 미사 때만 만나는 분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만 가르치시지 않고 시장에서, 광장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피의 삶을 떠나면서 시름에 잠겨 누워서 잠잘 때, 하느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베텔’ 곧 ‘하느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도 새로운 반년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있는 지금의 이 자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와 일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조그만 따뜻한 마음, 조금만 여유로운 마음이 있다면, 우리들이 있는 바로 이곳이, 비록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곧 베텔로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만이 우리는 신앙인으로 우리가 받은 우리 이름을 귀하게 만드는 것이며, 바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우리들 통해 하느님을 알아봄으로, 세상 끝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한 하느님의 약속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의 집’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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