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영향을 주는 신앙인

2011. 7. 27. 오전 9:28:15

글자
영향을 주는 신앙인                  김태현 마태오 인천 레지아 담당사제
 
 
저에게는 6살 난 조카가 하나 있습니다. 몇 달 전쯤 조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조카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불을 끄는 소방차가 되고 싶다고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왕이면 ‘큰아빠처럼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소리를 듣기를 원했던 저의 기대는 헛된 바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조카가 어머니가 사용하시는 다림질 판위에 성서를 놓고, 딱지를 꺼내서 들어올리며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하고 “할머니, 그리스도의 몸”하며 딱지를 주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와 부모님을 따라서 성당을 자주 가다보니, 신부님의 성찬례 거행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보고 듣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 어떠한 교육과 영향을 성모님과 요셉성인에게 받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루카 3,41-52절을 보면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느라고 고생한 성모님과 요셉성인께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하며 오히려 반문을 하십니다. 성전이 아버지의 집이니 내가 여기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을 보면서, 과연 우리의 아이들과 부모님들도 그럴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생겨납니다. 아마도 당장 꿀밤부터 주고자 주먹을 쥘 부모님들이 많지 않을까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이 가능한 것도 성모님과 요셉성인의 신앙의 영향일 것입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무조건 믿고 임신한 약혼자인 성모님을 맞이한 요셉성인이나(마태 1,18-25), 가브리엘 천사의 예수님 탄생 예고에 대하여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순명하신 성모님이나 모두 하느님을 향하여 자신의 삶을 정향시키신 분이십니다. 마치 해를 향하여 따라가는 해바라기같이 말입니다. 이러한 부모님이 곁에 계셨으니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겼을 것이며,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님들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자라날까요?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경쟁과 영어교실, 미술교실과 같은 세상에 대한 교육은 조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빨리 시작되고 있는데, 신앙에 대한 교육은 나중에도 가능하다는 변명 속에서 하느님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듭니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영어가 중요하고, 아이들의 정서와 건강을 위하여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유리한 것만을 찾아주려는 부모님들의 모습 속에서 그것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떠한 영향을 받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하여 가르치셨고, 그 삶의 모습은 십자가상의 희생과 부활로 절정을 이루셨습니다. 모든 이들을 위한 속죄와 구원에 대한 희망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스도 신앙의 삶으로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을 통하여 새로 태어난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그분과 함께 살아가며 얻은 체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영향은 우리에게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의 동반자이며, 이러한 삶의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마태 28,18-20).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영향으로 이웃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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