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교회는 악마를 경계하라는 의미로 성당 지붕 귀퉁이나 빗물받이 출구에 ‘가고일(Gargoyle)’이라 불리는 기괴한 모습의 악마 조각상을 설치했다. 구강 청결액을 머금다가 뱉어내는 가글이란 용어는 이 괴수가 빗물을 토해내는 모습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악마는 이처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기괴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출처= pixabay
악마는 교묘하다. 뿔과 꼬리가 달려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악마는 동화책에나 나온다. 악마가 그런 기괴한 몰골로 나타나 유혹하면 거기에 넘어갈 바보는 없다.
악마는 우리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창세 4,7) 기회를 엿보다 틈이 보이면 비집고 들어온다. 때로는 ‘빛의 천사’(2코린 11,14)로 위장하고 다가온다. 성경학자 뺨치는 실력으로 하느님 말씀을 들먹이면서 부와 권력, 명예를 약속한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자신이 쌓은 부는 신의 축복이라며 야곱이 부자가 된 이야기(창세 30)를 늘어놓는다. 그러자 안토니오는 “악마도 제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인용할 줄 안다”고 반박한다.
악마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할 때도 성경을 인용했다.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성 꼭대기에 데리고 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때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11-12)라는 성구로 예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악마의 유혹은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유혹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외양을 띠고 있다. 유혹은 우리를 노골적으로 악으로 초대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 서툰 짓일 것이다.”(「나자렛 예수」)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재미있는 전승으로 악마의 은밀한 공격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300명의 수도승이 구도하던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은 악마의 침입을 막아 보려고 아침에는 흰 말, 낯에는 붉은 말, 저녁에는 검은 말을 타고 번(番)을 돌았더니, 그 악마는 대수도원장의 모습으로 들어오더라.”(「영혼의 자서전」)
구약 전통에서 악마는 하느님과 대적하는 악한 영, ‘사탄’으로 불린다. 사탄은 ‘방해하다’, ‘반대하다’라는 히브리어다. 악마의 속셈은 분명하다.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고, 자신이 그분의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과 수법은 다양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공동체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을 악한 영이라고 본다. “뒷담화만 안 해도 성인이 된다”는 유행어는 이러한 인식의 가벼운 표현이다.
“분열은 악마가 교회를 내부에서 파괴하려고 손에 쥐고 있는 무기이다. 악마는 두 종류의 무기를 갖고 있다. 분열과 돈이다. 악마는 주머니로 들어와서 혀를 통해, 분열하는 험담을 통해 교회를 파괴한다.”(2016년 신임 주교 세미나 연설)
교황은 10월 묵주기도성월에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려는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 달라는”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긴급히 요청했다. 이 요청은 최근 교회를 곤혹스럽게 하는 성직자 성추문 사태와 관련이 있다. 교황은 이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무겁게 공동체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고위 성직자 몇 명이 교회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다니는 데 대해 통탄하고 있다.
교황은 이들을 “추문을 만들려고 트집을 잡는 듯이 보이는 거대한 고발자”라고 비판했다. 또 “우리가 비난하고, 저주하고,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면 파괴자가 되고, 자비를 결코 살아본 적이 없는 거대한 고발자(사탄)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며 이에 대항하는 두 가지 힘을 거론했다. 하나는 기도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정신과 다른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다.
교황은 “묵주기도는 제 인생을 동반했던 기도이며, 단순한 사람들과 성인들의 기도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길을 알려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라고 트위터를 통해 고백한 바 있다.
교황의 이 요청을 듣고 나온 국제 기도 네트워크 사도직 대표 프레데릭 포르노스 신부는 바티칸 뉴스 인터뷰에서 “악은 유혹자이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와 생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만, 천천히 분열과 거짓 등 악한 의지로 사람을 이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힘든 시기에 성모의 도우심을 청하자는 것이 교황의 뜻이라고 전했다.
교황은 묵주기도 끝에 마리아와 미카엘 대천사에게 드리는 전통적 기도(1면 기도문 참조)를 바쳐 달라고 당부했다고 포르노스 신부는 덧붙였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 묵주기도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이룩한 놀라운 사건을 묵상하는 기도다. 그림은 로렌초 로토 작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 1539년, 산니콜로성당, 이탈리아 친골리
10월, 묵주기도성월이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초대 교회에서 시작됐다. 묵주기도는 초대 교회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형장에 끌려 나갈 때 썼던 장미관을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바친 데서 유래했다. 묵주기도를 일컫는 ‘로사리오’는 라틴어로 ‘장미 꽃다발’이라는 뜻이다.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시편을 50, 100편 또는 150편씩 매일 외웠는데,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면서 기도 횟수를 헤아렸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그 수만큼 바쳤다. 열매나 구슬 150개를 노끈이나 가는 줄에 꿰어 사용한 관습이 묵주기도를 탄생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묵주기도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한 건 13세기께부터다. 당시 알비파라는 이단 세력이 교회를 위협하자, 성 도미니코(1170~1221)는 묵주기도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고, 이단 세력이 점차 축소됐다. 이 시기에 처음 ‘마리아의 환희에 대한 묵상’을 묵주기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날과 같은 묵주기도는 15세기에 등장했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알랑 드 라 로슈 수사가 1464년 예수와 마리아의 생애를 강생과 수난, 부활에 따른 환희ㆍ고통ㆍ영광 등 세 가지로 나눴고, 15세기 말께에는 15단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가 추가된 것은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반포하면서다. 빛의 신비는 그리스도 공생활의 주요 신비를 묵상한다.
묵주기도 신심이 전파된 것은 1830년 성모 마리아가 발현해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호소하면서다. 성모 마리아는 1830년 파리에서 발현했으며, 1858년 루르드에서 묵주를 가지고 나타나 베르나데트(1844~1879)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줬다.
10월을 묵주기도성월로 선포한 사람은 레오 13세 교황(1810~1903)이다. 10월을 묵주기도성월로 정한 것은 승리의 성모 축일이 10월 7일이어서다. 이날을 축일로 정한 일화가 있다. 1571년 그리스도교 군대가 이슬람 군대와 맞선 큰 전투가 코린토 인근 레판토 만에서 벌어졌다. 레판토 해전이라 불리는데, 이슬람 국가인 터키 함대가 로마에 상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 비오 5세 교황이 조직한 그리스도교 연합군이 고전하자 교황은 교황청에 있는 성직자들을 불러 승리를 기원하는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리스도교 군대가 대승을 거뒀고, 교황은 묵주기도를 바친 이 날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제정했다. 현재는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을 바꾸어 지낸다.
레오 13세 교황은 1883년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했다. 비오 10세 교황도 “묵주기도만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도 없다”면서 “묵주기도를 매일 정성스럽게 바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17년 파티마에서 6차례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묵주기도를 매일 15단씩 바치면 전쟁이 끝나고 죄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발현에서는 자신을 ‘묵주기도의 어머니’라고 선언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묵주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자 구원적인 강생에 집중하는 기도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끝없는 찬미”이며 “가장 순수한 기도”라고 했다.(46항)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항상 모든 위험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보호를 청하는 기도(레오 13세 교황이 작성)
성 미카엘 대천사님, 싸움에서 저희를 지켜 주소서.
사탄의 악과 간계에서 저희를 보호해 주소서.
간절히 청하오니,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사탄을 쫓아버리소서.
천상 군대의 영도자 미카엘 대천사님,
영혼들을 멸망시키려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사탄과 모든 악령을
하느님의 힘으로 지옥으로 쫓아버리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