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은 두 개의 장면으로 묘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모세가 산에서 두 번째 증언 판을 받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모세가 빛나는 얼굴로 시나이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다.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은
1530년에 <구약성경과 신양성경의 비유>를 그렸다.
이 작품은 로마서를 바탕으로 신구약성경을 요약한 것으로
루카스 크라나흐가 여러 번 다루었던 주제이다.
한스 홀바인의 그림은 왼쪽의 구약과 오른쪽의 신약을 경계로 나무가 있는데,
왼쪽은 죽은 나무 가지가 있고, 오른쪽은 잎이 무성한 가지가 있어
죽음과 생명이 극적으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벌거벗은 ‘사람’(HOMO)이 앉아 있는데,
그의 왼쪽에는 이사야 예언자가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세례자 요한이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보라,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이사야 7,14)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을 가리키며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이라고 쓰여 있고,
세 명의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세례자 요한의 고백을 듣고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고,
그 중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그를 베드로라 불렀고,
그들을 첫 제자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발아래에는
무덤을 뚫고 승리의 십자가를 들고 부활하시는 예수님께서 해골을 짓밟고 있다.
그리고 무덤 위에는 ‘죽음의 승리’(VICTORIA NOSTRA)라고 쓰여 있어
예수님의 부활로 죽음을 이기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말한 그대로이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이다.”(로마서 5,17)
그러나 예수님의 반대쪽에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장면이 나오고,
‘죄’(PECCATUM)라고 쓰여 있으며, 그들의 발아래에는 무덤 속에 해골이 있고,
관에는 ‘죽음’(MORS)이라고 쓰여 있다.
아담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로마서 5,12)
그런데 아담과 하와 뒤에는 구리 뱀이 있고, 예수님과 제자들 뒤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님이 있다.
그리고 구리 뱀에는 ‘의로움의 신비’(MYSTERIUM IUSTIFICATIONIS)라고 쓰여 있고,
십자가에는 ‘의롭게 된 우리’(IUSTIFICATIO NOSTRA)라고 쓰여 있다.
아담과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이다.
또 모세의 구리 뱀은 신앙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는 십자가의 예표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보잘것없는 양식에 진저리가 난다며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냈고,
이스라엘 백성이 불 뱀에 물려 죽었다.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자,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고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나게 했다.(민수기 21,1-9)
이 사건은 불순중과 순종의 좋은 본보기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니코테모와의 대화에서 이 사건을 예로 들어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설명해주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그런데 구리 뱀 아래에는 모세와 아론만 무릎을 꿇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뒤에는 목자들이 천사의 음성을 듣고 있다.
이것은 마치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목자들에게 알리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천사가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0-11.14)
그 구원자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셨다.
그래서 오른쪽 산꼭대기에는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들고 있는 아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이 은총(GRATIA)이다.
그러나 왼쪽 산꼭대기에는 모세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증언 판을 받고 있다.
이것이 율법(LEX)이다. 하지만 우리가 율법의 지배를 받으면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은총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앉은 돌 의자에 로마서의 말씀이 쓰여 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서 7,24)
이 질문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