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저는 체육이라면 몸이 떨릴 정도로 둔한 학생이었지만
유일하게 잘 하는 운동은 멀리 뛰기였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멀리 뛰기를 좋아할 이유는 되지만,
무엇보다 제가 이 운동에 ’호감’을 가졌던 것은
두 번의 기회가 허락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기록 중 나은 것이 선택된다는 원칙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어쩌면 그 여유가, 운동 못하는 저로 하여금
없는 실력을 이끌어 내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일지도 모르지요.
올해 회장 일을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 멀리 뛰기다.
전년도 부회장으로서, 이렇게 저렇게 대기 좋은 핑계만 늘어놓고
모자라는 것이 너무 많아 부끄럽게 마감할 뻔했는데.
어디 잘 할 때까지 해 봐라, 하느님과 교사들이 ’작정’하셨을까.
황망스럽기는 했지만, 두 번째 기회니까,
그래, 이번엔 창피하지 않게 잘 끝내보자.
이번에 잘 하면, 전에 못했던 기억은 지워질 거야.
잘 해 보는 거야.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올해 일을.
나름대로 애를 써도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때로는 아주 좋은 조건인데도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놓칠 때도 있었습니다.
앞뒤 없는 격려에 감동도 받았고,
좋은 선후배 교사들 덕분에 성숙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만큼,
속 모르는 비난에 솔직히, 상처도 받았습니다.
와, 이런 협조를! 하고 감탄할 때가 있었듯이
확, 성질대로 해버려? 하고 발끈할 때도 있었습니다.
"연합회는 상급단체가 아니다. 같이 일하고 소득은 일한 만큼 나누자"는
저의 이 세속적인, 현실적인, 냉정한 기치에 다행히 많은 교사들이
고개를 끄덕여 주신 점, 깊이 고맙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회장단을
(미안하지만 거친 표현 한 번 쓰겠습니다)
"서비스업자" 대하듯이 하실 때는 화가 났습니다.
상급단체는커녕 서브단체로 본 건 아닐까.
왜 우리를 보기만 하면 다들 화난 사람들 같은 거지?
왜 무슨 평가를 하든 나쁜 얘기만 하는 거지?
그럼 그건 모두의 공동 책임 아닌가?
마치 누구의 잘못인지를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듯
회장단을 공격하는(!) 일부 선생님들 때문에
가슴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습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되는 걸 어떡해?
사람들이 요구하는 최선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다를 수도 있지만,
회장단은 아무것도 안 하고 "회장단"만 하고 사는 사람들인 줄 아나?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도 평교사일 때, 본당 교감일 때 그랬더군요.
말하기 좋죠, "지구가 그렇지 뭐."
그리고 그 때는 그렇게 말하는 걸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도 하구요.
이래저래 힘도 빠지고 재미도 없고 화도 나고
게다가 이제 막 시작한 사회 생활에, 개인적인 어려운 일에 정신도 없고..
그전처럼 그렇게 기를 쓰고 일할 수는 없었던 것을 인정해야겠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이 일도 하면 할수록 어렵고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말입니다.
두 번째 멀리 뛰기 기회를 그렇게 망친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두 번의 기회가 있다고 좋아하기는 했는데요,
생각해 보니, 두 번째 기록이 엉망이면, 다시 모래판 정리할 사람에게
민망하고 부끄럽고 미안하고...그렇지요.
재호 오빠와 영정이, 새 회장단, 그리고 신부님께 그런 마음입니다.
첫 기록에서 어찌 되었든 물러날 걸 그랬어요.
너무 늦게 떠나는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그럼 조용히나 떠날 것이지 왜 들어와서 횡설수설이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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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1지구 교사들, 나의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는 해야지요.
그동안 잘 참아 주신 것에 감사한다는 인사는 해야지요.
재호 오빠하고 영정이한테, 저 때문에 고생하고 열 받고 한숨 나고 했던 것이
다른 동료들의 기도로 치유될 거라고, 미운 변명이라도 해야지요.
그리고요, 그리고 말이지요,
이것저것 다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사는 게 재미없고 무거울 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어떤 일도 하기 싫고
그냥 어디로든 확 떠나, 아니 숨어버리고 싶을 때,
비록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떠날 수 없었던
단체 혹은 모임 혹은 그냥 "사람들"
여기였습니다. 1지구. 1지구 일. 1지구 사람들.
그래서 떠나는 마음에 서운함보다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그동안 제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선생님이 있다면 용서해 주세요.
때로 너무 건방지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던 것도,
성질이 못돼 그러려니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봐 주세요.
잘못한 일들이야 셀 수 없겠지만 이제 지난 일이니까,
너무 미워하지 마시고 덮어주세요. 모르고 그랬어요.
인수인계는 잘 하겠습니다.
그리고 새 회장단에게 건강과 평화,
사랑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너무 길어졌어요.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네.
여러분 모두 안녕히 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