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닫는 선물!"
"용서!" 라는 말을 들을 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신에게 상처주었던
사람의 얼굴입니다.
마음이 편치 않기에 '용서하고 화해해야지' 하고 다짐해 보지만 마땅히
용서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해 심기만 더 혼란스럽게 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용서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아 화해의 기쁨을 얻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용서해야만 할까요?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 질문의 답을 찾고자 합니다.
"너희가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6,48).
이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 우리가 용서해야 할 이유는 인간적 관계나
도리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베푸시는 그분의 사랑, 바로 이것이 우리가
용서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용서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용서에도 한계가 없습니다.
불의한 이에게도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인색한
용서의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움과 의지로 원수를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 사랑의 실천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완전한 용서는 끝없는 사랑을 체험할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끝까지 보여주신 사랑'만이 우리가 본 받아야할
예표입니다.
교부인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원수 사랑의 실천을 아홉 단계로 세분하여
설명합니다.
'불의로 시작하지 않는 것, 자기가 당한 대로 되갚지 않는 것,
평정을 유지하는 것, 억울한 고통도 기꺼이 당하는 것, 더 많이 주는 것,
잘못한 이를 미워하지 않는 것, 사랑하기까지 하는 것, 선을 베풀기까지 하는 것,
원수를 위해 간청하는 것.' 지금 우리 자신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사랑에 동참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닮음으로써만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남덕희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노인사목부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