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빛을 세상의 어두운 곳에
새해 첫 주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함은 매우 의미가 깊은 듯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분께서 구세주이심을 우선적으로 고백하며, 또 공현의
의미대로 그분의 빛을 따라 살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독서 말씀들은 이런 의미를 그대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어둠 가운데 주님의 참된 빛이 솟아오름으로 구원의 시대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제1독서)과 그 효과는 비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만인에게 미칠 것
(제2독서)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를 맞이하고 살아갈 우리에게 우리가 받은 것을 깨닫고
능동적으로 동참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속에서는 2가지 정도를 함께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그중에서도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찾았다는 점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헤아려 이치를 깨닫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주변과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던
이들입니다.
그랬기에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신비'를 만나게 됩니다.
반면에 성경을 연구하며 누구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자부하던 이들은
그렇지 못했기에 알아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자본과 국가 정책에서 소외당하고 잊혀진 채 외로움에
고통받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들에 대한 관심 없이 살아간다면 누구보다 하느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같은 우를 범할 것입니다.
둘째, 마구간을 찾아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별빛을 따랐던 박사들은 예루살렘 근처에 와서 별빛을 잃어버립니다.
그들 역시 그리스도는 '귀한 가문'의 후손일 것이라는 인간적 통념에 마음을
빼앗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벗어난 이들은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구간을 주저함 없이 찾아들고 예물을 드립니다.
늘 통념에 젖어 살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개방성이 없었다면
그들 역시 베틀레헴에 와서도 여전히 헤맸을 것입니다.
이는 겸손한 사람, 곧 하느님과 이웃들 앞에 열려 있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신비를 볼 자격을 갖추고 또 실제로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보내며, 주변에 또 숨겨진 이웃의 고통에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 볼 수 있었으면, 또 기도 속에 그들을 안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분명 그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성훈 파비아노 신부(호원동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