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체 때 가져야 할 내적 자세
예수께서는 자주 나에게 영성체 때에 그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내가 그분과 얼마나 열렬하게 결합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매순간 나는 그분 자신과 그분의 삶을 통해 살아야 한다.
영혼이 육신을 움직이고 그의 모든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성령께서 내 영혼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모든 행위의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성령께서 내 영혼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모든 행위의 근본 원인이 되셔야
한다.
영혼이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본성적인 생활만으로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 수가 없다.
사랑은 영혼에게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전심을 다하는 데 있어서
한순간도 지체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오, 예수님! 나의 영혼을 온전히 차지하십시오!
내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게 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가 아니라면 그 어떠한
감정도 갖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나의 삶이 당신과 피조물 사이에서 더 이상 나눔없이, 생애의 모든 순간의
당신의 거룩한 사랑에 봉헌하고 몰두하고 싶은 것이 내 영혼의 큰 소망입니다.>
<오, 예수님! 모든 처지에서 내 자신을 초월하고, 이 고귀한 길로 나아가는
삶에서 항구하기 위해 더욱 큰 은총을 저는 필요로 합니다.
당신의 전능하심은 나의 무력함 속에서, 당신의 자비하심은 나의 가련함 속에서
찬미받으시기를!>
예수님께서 이처럼 신비스런 형체 안에 숨어서 나의 입을 통해 내게 오실 때
나는 그분께 나의 전 존재를 바친다.
그리고 나의 모든 정신력과 활동은 그분의 높으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주 없어지고 고통 중에서도 고요히 예수님 앞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분이 내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나를 내어드리게 된다.
즉 예수님은 내 안에서 성부께 사랑과 흠숭, 찬미를 드리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나는 그분의 신적 생명에 들어감으로써 나 자신과 세속으로부터는 죽게
되는 것이다.
또 어느 때에는 나의 이성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기해 본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21).
하느님과의 완전한 결합은 잦은 영성체에 기초를 두어야 하고 또 이 결합을
통해서만 활동해야 함을 나는 여기서 깨닫게 된다.
우리가 아주 작은 불충실로도 이 결합에서 빗나가게 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슬프게 해드리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오직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데, 피조물인
우리가 그분을 멸시하고, 무관심하고, 그분께 등진 것을 보시기 때문이다.
완전한 일치는 가능한 대로 계속적으로 우리 마음이 그분과 결합하여 있고,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모든 생각과 지향, 원의를 갖고자 한다.
<인자하신 예수님, 나는 가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우리를 당신과의
완전한 결합에로 이끄시려는 하느님의 열망을 마음뿌듯이 느끼며 바라봅니다.
이 때 저는 우리 인간에 대한 당신 사랑의 기적들을 많이 발견합니다.
또 당신은 우리가 불리움받은 그 지복의 아름다움과 우리에게 주어질 고귀한
직분과 몫을 보여 주십니다.>
영혼이 피조물로부터 자유로워질수록 그는 더 완전히 하느님과의 일치 가운데
있을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덜 받게 되는 것을 큰 행복으로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행복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순결과 사랑과 합일, 하느님만이 우리를 은총으로 인도하는 계단이고
이를 위하여 우리는 성실해야 한다.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제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