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신부님, 주교님께 이를 거예요!"

2018. 12. 11. 오전 6: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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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신부님, 주교님께 이를 거예요!"

 

 

오늘은 연중 34주일. 벌써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다. 마지막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번 한 해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이었지만, 전 세계 다방면에 걸쳐 유난히 '갑질'이라는 키워드에 이목이 집중된 시간이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갑질 신부님! 주교님께 이를 거예요" 본당에서 몇 차례 들었던 어느 교우의 귀여운 협박(?)이다. "갑질 신부님"… 스스로를 성찰해 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갑질의 주된 대상은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그 교우분이 아니라, 예수님이었다. 빌라도의 눈에는 죄수 가운데 하나의 모습으로 서 있는 예수님은 그저 조롱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라고 물었겠지. 아무리 눈을 씻고 쳐다봐도 왕다운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을 테니… 우리는 그러지 않았을까? 나의 바람과 기도와 간절한 요청대로 해 주지 않으시는 주님을 향해 "이것도 안 들어주시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것도 못해 주시면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입니까?"라는 원망, 실망의 마음을 가져보지 않았을까? 주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실상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았던가?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만 앞세우지 않았던가? 적어도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한다면, 그리고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과 좋아하시는 것, 그분의 가르침을 더 우선했어야 했다. 하지만 반대로 왕을 곁에 모시고서 내 마음대로 했다면 이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갑질 중의 갑질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갑질 신부님!!’이라는 귀여운 협박이 장난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을 대상으로 갑질을 했으니….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라는 빌라도의 말이, "당신이 그러고도 하느님의 자녀요? 당신이 그러고도 주님의 사제요?"처럼 들려온다. 그래서 오늘은 빌라도 앞에 죄수의 모습으로 서 계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왕의 모습을 발견할 줄 아는 신앙을 갖게 해달라고 청하는 날이 아닐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주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나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자녀다운, 주님의 사제다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더 어려울 테니까! 부디 구름을 타고 오실 주님께서 이런 엉터리 같은 내 모습에서 그래도 하느님의 자녀다운 구석을, 주님의 사제다운 구석을 조금이라도 찾아봐 주시기를 아니 찾아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소재나 가브리엘 신부 (전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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