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2018. 12. 3. 오전 7:02:34

글자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장례미사를 봉헌하다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과 마주할 경우가 있습니다. 노환도 아니고 투병생활을 한 것도 아닌 갑작스럽게 맞아한 죽음이 그러합니다. 물론 모든 죽음이 안타깝지만 갑작스런 죽음이 더욱 그러한 이유는 화해와 용서 뿐만아니라 작별인사마저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는 고인 당사자만이 아니라 유가족, 그리고 고인과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장례미사의 강론은 저에게 있어 참으로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느 날 문득 잠자리에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내일 일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안되는 신부의 삶이지만 그동안 내 의도와 상관없이 꼬여버린 인간관계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던 일들, 자비와 사랑이 가득하신 예수님을 닮은 신부가 아니라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사목하면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사람들을 다그쳤던 수많은 과오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용서도 화해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면...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가 종말론적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오늘이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단지 내 욕심을 채우기만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 주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것"(마르 12,31-32)입니다. 사람(신자든 아니든)은 누구나 예외없이 죽음이라는 같은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의 죽음은 쉽게 이해하면서도 정작 나의 죽음은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치 자기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처럼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마르 13,32). 당연한 것 같은 내일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잘 지내다가 오늘 싸우고 내일 당장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혹여나 그동안 서운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소원한 관계가 있다면, 오늘 ''잘 지내니"라고 문자 한통 보내 보면 어떨까요? 물론 저도 막상 그렇게 하려니 용기가 부족하여 잘 되지 않습니다. 화해와 용서의 조그마한 움직임도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2코린 5,14) 이제 전례력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왕으로 다시오실 우리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새롭고 홀가분하게 대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번 한주 조금만 더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양종석 베다 신부 (덕정 부주임)-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기도.묵상 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