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기다림은 지상에 사는 인간의 근본적 자세이고, 불안과 고통은
인간의 집이며, 종말론은 그의 희망입니다.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모든 세대가 세상의 행복, 세상의 평등을
건설하려고 시도하는 초기의 노력이 무참히 깨어지면서 그 직접적
결과로 인간의 내면에는 더 심각한 불신과 죽음보다 더 괴로운
염세적 성향이 남게 됩니다.
유효한 요소로는 선의의 사람들의 선한 의지, 그 건설에 투입된 사랑,
하느님 나라라는 거룩한 모델을 향한 더욱더 분명한 접근이
그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람이요,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다.
그러나...어떻게 사람이 지상의 차원에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그의 존재에 신성(神性)의 싹들을 심어 주셨고,
하느님 나라의 차원처럼 무한히 위대하고 완전한 차원을 설정해
놓으셨는데 말입니다.
이 하느님 나라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우리 안에 있다면,
어떻게 인간이 인간 중심적인 이 지상의 나라ㅡ비록 아름답고
흥미로울지라도ㅡ에 안주할 수 있겠습니까?
조만간 그 장벽이 무너질 것입니다.
내면으로부터 하느님 자녀의 참된 본성이 드러나게 되면 어떻게
인간의 자녀가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겠습니까?
여기에 불안의 참된 요인, '새로움'을 추구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현실 너머 저편으로 볼 수 없는 존재의 벽을 뚫고 나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요컨데, 가장 위대한 진리, 가장 흥분을 자아내는 소식, 가장 강렬한
확신은 바로 이것입니다.
즉 내가 한낱 '주님의 보잘것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부자관계는 법적 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사실관계입니다.
인간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은총으로써 하느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은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위대성의 근간을 형성하고 모든 희망의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