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을 나누어주시는 예수님처럼 나누자!

2018. 9. 5. 오전 6: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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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나누어주시는 예수님처럼 나누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51)." 우리는 연속 4주 동안 빵에 대한 복음 말씀을 듣고 있다. 빵에 대한 복음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감을 나타낸다. 둘째는 자신의 몸을 생명의 빵으로 변화시켜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예수님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나눔을 실천하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한다. 25년 전 신학교 휴학 시절에 대구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지낸 적이 있었다. 아침에는 외국어학원을 다녔다. 어느 날 자취방을 나와 골목길을 한참 걷다가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를 주웠다. 그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 시내 학원으로 가면서 한 손으로 호주머니 속의 만 원짜리 지폐를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오늘은 곰탕을 한 그릇 사 먹을까, 혹은 탕수육을 사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 당시 자취를 하며 궁핍하게 생활하는 상황이었고, 또 25년 전 만 원은 매우 큰돈이었다. 암튼 수업을 들을 때도 눈은 외국어 교재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무얼 사 먹으면서 몸보신을 할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코리아헤럴드학원에서 나와 대구백화점을 지나 동성로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웬 걸인이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서 바구니를 놓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담요로 싼 아기까지 눕혀놓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영업 전략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걷다가 우연히 그 걸인 아주머니를 쳐다보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있는 내 손가락은 만 원짜리

지폐를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내가 이 돈을 안 주웠다면, 이 돈은 길거리를 오가는 이분들이 주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돈의 진짜 주인은 내가 아니고, 이분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이 돈은 좀 큰돈이어요.

아침에 비싼 음식을 맛있게 사드세요.” 라고 이야기하고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정류장으로 가서 시내버스를 타고 자취방으로 귀가했고,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같이 인근 대학 구내식당에서 5~6백 원짜리 밥을 사 먹었다. 대학 구내식당 밥값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난다.

여느 때와 같이 돈이 없어서 제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 백반이었지만, 그날만큼 맛있게 먹었던 적은 없었다. 아마도 나눔에서 오는 풍요로움, 넉넉함, 기쁨 때문에 더욱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만일 내가 만원을 꽉 움켜쥐고, 걸인 아주머니를 지나쳐 곰탕이나 탕수육을 사먹었다면 과연 맛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5,51).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5,56).” 즉,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예수님과 인격적 일치를 이루게 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참고). 그래서 자신을 나누어 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나눔을 실천할 신앙적 당위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제1독서에서도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빚은) 술을 마시고(잠언 9,5 참조)”긍정적으로 변화되길 촉구하신다. 예수님의 몸으로 인해 세상은 생명을 얻는다. 우리는 생명의 빵인 예수님의 몸을 감사와 기쁨, 사랑으로 받아 모시면서, 또한 배고픔과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 봅시다. 그래서 나눔에서 오는 기쁨과 풍요로움도 누려봅시다. -서철승 가롤로 신부 (전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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