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그리고 #미투(Me Too)
이곳 프랑스의 겨울은 한국과는 달리 겨울에도 초록의 풀들이 남아있다.
그 이색적인 풍경이 놀랍기도 하지만 끈질긴 잡초들을 보며 내 안에서도
죽지 않으려 버티는 밀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여전히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매년 찾아오
는 사순시기. 여전히 주님의 고통보다 내 불편함에 마음이 더 쓰이고,
단식과 자선보다 맛있는 음식과 내 필요에 많은 시간을 보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순시기의 막바지.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많은 피해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죄를 묻고 있는 이 시간들 속에 있다.
어쩌면 이 아픔의 시간들이 진정 사순시기로 이끄는 것은 아닐는지.
감당할 수 없는 힘 앞에 얼마나 움츠려들었을까?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또 입을 떼기까지 얼마만큼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했을지…
그녀들의 상처와 응어리진 시간들이 우리를 회개의 시간으로, 기도의 자리로
이끌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지위와 힘, 내 것이라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썩어
없어져야 할 하나의 밀알이었던 것을. 그것들이 썩어지지 않으면
양분도 되지 못할뿐더러 악취와 독성만 더할 뿐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 나는 너의 허물을 용서하고, 너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예레 31,33-34)
예레미야의 입으로 전하신 새로운 약속의 힘으로 우린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여전히 발목을 잡아끄는 썩어지지 않는 밀알들에도 불구하고 나대신 용기를 낸
이들 덕택에, 우리 대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신'(히브 5,7)
예수님 덕택에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목숨'을 간직할 수 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요한 12, 25)
-김항수 파스카시오 신부 (해외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