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실천하는 빛
니코데모는 바리사이면서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으로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성경은 묘사합니다
(요한 3,1-21 참조).
다만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 3,5)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재차 질문합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요한 3,9)
오늘 복음은 그에 대한 대답에 해당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4절)는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십자가에 현양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이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알고 그분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물은 세례성사를, 성령은 견진성사를 각각 상징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어 올려진 이유는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17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오신 그분을 따르는 길,
어둠과 악을 멀리하여 진리의 빛으로 나아가는 길은 세례와 견진을 통해 알려지고,
이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태어나도록' 해 준다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가던 걸음 멈추고 우리가 걷는 길을 돌아봅니다.
과연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을 빛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습니다."(19절)
내가 어둠을 선택했든, 어디로 갈지 몰라 어둠 속을 헤매고 있든, 갈팡질팡 신앙의
길목에서 자, 어디로 갈 것인가?
앞이 캄캄한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빛과 어둠이라는 극명한 대조를 통해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그것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결단에로의 촉구입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신다는 것. 어둠을 멀리하고
빛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십자가로 몸소 구원의 빛이 되어주셨다는 것.
이제, 다시, 니코데모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 십자가에 현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를 실천하는 빛'(21절)이 되기를.
김정일 안드레아 신부 (신앙교육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