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곳에서 희망을

2018. 3. 12. 오전 6: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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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곳에서 희망을

 

 

오늘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21절)으로 당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지요. 제자들이야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그 뜻을 알게 되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상 죽음의 의미를 미리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곧, 무너진 뒤에야 다시 새롭게 된다는 것, 죽어야만 다시 살아난다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라는 부활의 희망을 근거해 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전은 '무너져야 할 것들'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허물라”(19절)는 명령은 우리 삶안에서 새로워져야 할 것들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우리가 허물어야 할 것들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문득 어린 시절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는 놀이가 생각납니다. 손 위에 흙을 덮어 톡톡톡 다져가며 새 집을 만들 때 부르던 노래입니다. 새 모래집이 마음에 안 들면 부수고 다시 집을 짓습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헌 집.이 무너지고 .새 집.이 지어지면 뿌듯해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헌 집을 무너뜨리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새로 만들어질 .새 집.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더 튼튼한 집이 지어질 터였으므로. 우리 내면의 성전을 허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물어야 할 것들을 성찰하고 무너뜨릴 때에는 두려움 없이 해야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듯" (15절) 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무너질 것이 두려워 허물지 못하면서 내가 쇄신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결코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두려움 없이 무너뜨리는 것, 그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새롭게 만들어 주실 것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비록 지금의 나는 죽더라도 더 정화된 나를 만날 거라는 희망 때문이겠지요. 무너뜨리는 행위는 그래서 '희망'에 의한 것이어야지 '감정’이나 '분노'에 찬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판을 뒤집어엎는 행위의 출발점은 '분노'가 아니라 당신 집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열정이란 부활에 대한 강한 신뢰에 다름 아닙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열정'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복음입니다. 낡은 것을 없애시고 새 것으로 채워주실 부활의 희망에 온 존재를 걸고 싶게 만드는 '신뢰'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무너진 곳에서 다시 찾는 '복음의 기쁨'입니다. -김정일 안드레아 신부 (신앙교육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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