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찾느냐?
요즘 들어 찾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성당 열쇠를 어디에다 두었더라?
감실 열쇠는?
자동차 열쇠나 지갑은?
어떨 때는 금방 찾기도 하지만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찾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찾고 나면 모두 다 내가 놓아둔 곳에 있고 내가 거처간 곳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찾는다.'라는 뜻을 살펴봅니다.
첫째, 현재 주변에 없는 것을 얻거나, 사람을 만나려고 여기저기를 뒤지거나
살피는 것.
둘째, 모르는 것을 알아내고 밝혀내려고 애쓰는 것, 또는 그것을 알아내고
밝혀내는 것.
이렇게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도 '찾는다.'의 첫 번째 의미에만 많은 시간
매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제1독서에서 사무엘은 자신을 부르는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익숙해져 버린 습관 안에서 스승 엘리가 부르는 줄로만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사무엘기 저자는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아직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사무3,7)라고
표현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십니다.
여기에서 찾는다는 것의 의미는 두 번째 의미를 내포한 물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찾습니까?
예수님을 찾는 것을 익숙해져 버린 습관과 나의 감각에만 의지한 채 안에서만
찾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사무 3,9)라는
고백과 함께 그분에 대해서 더 알고 밝혀내려고 애쓰면서 찾고 있는 것인가?
답은 후자이지만 실제의 삶은 전자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게으름이라는 질병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게으름은 그럴듯한 이름으로 스스로를 위장한 채, 우리에게 주어진
'무엇을 찾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과 대답을 둘 다 무시하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신앙인은 어떤 사람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고, 그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이 하신 일을 따라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찾느냐의 선택권은 우리들 두 손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찾느냐?' 는 것은 희생과 동시에 기쁨을 요구합니다.
-유창훈 요셉 신부 (광주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