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1월에
며칠 전 이웃에 사는 지기가 올해 세운 자신의 버킷리스트라고 들고 와서
보여주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늘 설렙니다.
아마 그도 그런 설렘에 리스트를 만들어 제게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신이 설계한 리스트를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 어떤 벌칙이 필요하다면서
내게 그 벌칙까지 요구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내게도 새해 설계를 만들 것을 권유합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그만큼 벅찬 일인가 봅니다.
하루를 약속받는다는 것도 가슴 벅찬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인데
하물며 한 해를 설계하면서 맞이하겠다는 그 이웃의 용기에 자극받아
나도 한번(?) 하는 생각을 합니다.
새해와 희망이라는 두 글자 사이에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끼워 넣습니다.
그리고 버킷 리스트라는 낱말보다는 위시리스트라는 낱말로 바꿔 봅니다.
올 한해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을 만들어 보려는 겁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약속을 위해 지나간 해에 써 놓았던 각오들을 우연히
발견합니다.
그 속에서 나는 5년 전에도 내가 만들어 보고자 하는 위시리스트를 만들었음을
발견했습니다.
5년 전에도 이루겠다고 세워놓았던 계획표들을 보면서 내게 아직도 남아 있는
고질병들, 고집, 편견, 오만과 그칠 줄 모르는 욕심들을 비워내고
내 안에 말씀을, 지혜를 채워 넣기를 바라는 그런 약속들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비슷한 약속을 담는 계획을 세웁니다.
아마 올해도 나는 무수한 약속을 하고 또 못 지키고 그럴 겁니다.
조성모의 '가시나무 새'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시나무 숲처럼 어두운 내 속이 빛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엠마오로 가고자 하는 것이 나의 계획표입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 1.5)
-송혜숙 안나 (前 서울예술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