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고,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자기 죄를 요한에게 고백하며 세례를
받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들 또한 신앙생활 안에서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고백한 죄를 하느님 은총으로 용서받았음을 분명 믿어 의심치 않지만,
보속을 통해서도 가시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주홍글씨 처럼 각자 풀어야 할 숙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는 "이미" 구원되었다고 믿으려 애쓰지만,
"아직" 같은 죄, 같은 고백이 반복되는 무디어진 죄의 늪에서 좀 더 나아지지 않는
내 삶의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열심한 신앙인들조차 신앙생활이 기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죄인이라서, 죄가 많아서, 믿음이 부족해서…."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기쁨의 감정을 느끼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의무를 다했는지, 죄가 많은지 적은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자동반사적인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전체 안에서 죄의 부분을 바라보아야 하지만,
우리는 죄 전체 안에서 부분적인 하느님 사랑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시선이 아닌, 오직 나 중심의 시선으로 우리의 죄와 믿음의 수치를
이성적으로 개량하고 판단하여, 기쁘지 않은 것이라고 감정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회개와 고해성사를 통해서도 내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사실 죄는 대부분
순간의 감정이 짓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우리 감정과
의식의 흐름을 보지 못한 채, 단지 여러가지 죄의 항목을 이성적으로 나열하고
가볍게 지나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으로 짓는 죄를 이성적으로만 반성하고 결심하니 그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의 개념을 너무 순간적이고 결과론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회개란 일회적인 사건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다는 좁은 의미라기보다,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평생 동안 하느님이 누구신지 진정으로 깨닫고 그분과 일치된
관계를 맺기 위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화'의 과정을 뜻합니다.
많은 평신도들, 수도자, 심지어 사제들이 독실한 믿음을 갖고 나름 열심한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를 성찰하기보다 의외로 의무,
계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는 것같습니다.
즉 하느님을 인격적 관계 안에서의 존재가 아닌 지식적, 이성적인 계명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마치 수십 년간 정말 친한 줄로 알고 있었던 친구에 대해서 정작 그 속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혹시 그렇지 않았는가를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느님과의 친밀하지 못한 관계에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보다 오직 나 자신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영성가들이 말하는 영성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교만'은 최소한 내 뜻을
하느님 뜻으로 보이게 위장을 하거나, 또는 실제로 내 뜻이 하느님 뜻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복음 말씀으로 돌아와, 우리가 추구하는 참된 신앙과 죄에 신음하는
감정과의 충돌이 일어나는 광야 한복판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따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보다 내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교만'에서 '겸손'으로
나아가려면, 성령께서 구원을 개인화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은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곧 성령께서는 내게 구원을 느끼게 해 주시고 또 구원이 나를 위해 현존하는 것으로
느끼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기억은 사랑에 근거하고 있고 사랑에 결합되어 있는 인간의 모든 인격, 곧 이성,
감정, 의지, 심지어 감각기관에까지 스며드는, 온몸으로 느끼는 사랑에 대한
기억입니다.
즉 지식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이해된 타인의 구원이 아니라, 내 삶에서 절실하게
느껴지는 '나의 구원', '나의 육화'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김동규 바오로 신부(휴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