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사랑, 그리고 거짓 사랑
"다 널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너한테 관심 없었으면 이런 말 하지도 않아".
이렇게 우리는 종종 진심어린 사랑으로 동료에게 조언을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며
신랄하게 비판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아무런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조언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인정하더라도,
감정적으로는 인정할 수없는 상황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방이 나의 진심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이 부족하다며 또다시
비판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상대방을 향해서 진실된 사랑으로 뻗어나가던 '너-중심'의 사랑이,
종국에는 거부당한 내 사랑에 대한 분노로 소급되는 '나-중심'의 사랑으로
대치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애초에 진실된 사랑을 담은 선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인간적인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으로 대치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 사랑에서부터 오는 것이라 믿으며 행하는 실천들 그 이면에는,
때때로 타인과 세상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고 만들어가려는 교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의 '영적 식별을 위한 규범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진실된 사랑이 우리의 인간적인 감정과
만나는 접점에서 악마의 교활한 간계가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악마의 주요 목적은 하느님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마는 하느님 사랑의 실재를 공격할 수 없으므로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인간의 정서와 감정에 교묘히 침투하여 공격하고,
결국 거짓 사랑을 진정한 하느님 사랑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마는 하느님을 인격적이고 사랑 가득하신 분으로서가 아니라
엄격한 율법 안에서 죄인들을 벌하시는 무서운 심판자로서 인식하게 만듭니다.
또한 신앙을 이상적, 도덕적 관념의 세계로 격하시키도록 우리 안에서 수작을
부리며, 우리가 하느님과의 친밀한 내적 관계 없이도 신앙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착각은 위선의 가면으로 포장되어 우리도 모르게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우리는 나의 미움과 증오를 건설적 비판이란 이름으로, 열등감과 두려움을
고집과 완고함이란 이름으로, 결단력과 용기의 부족을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성취욕과 교만을 사도적 열성으로 포장하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식별 없는 '거짓 사랑'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과,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거짓 사랑'에서 '진정한 하느님 사랑'으로 나아가려면,
그리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 안에서 그분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우리의 태도가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뿐이면서 마치 하느님을 사랑해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일상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사랑의 식별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 믿음과 사랑의 실체가 내 자신인지, 하느님의 뜻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김동규 바오로 신부 (휴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