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의 삶을 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라틴어로만 봉헌되던 미사는,
1967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눈과 귀에 익숙한 모국어로 봉헌되고
있습니다.
미사 경문은 하나의 언어로 구성되었고, 언어란 또한 시대를 반영하는지라
미사 경문 역시 지금까지 수차례 개정을 거쳐 왔습니다.
가장 최근의 개정은 1996년에 있었는데, 아마도 20년 이상 성당에
다니신 분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던 그때의 기억(?)이 오늘 미사 중에
다시 떠오르리라 여겨집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지난 8월 15일 「로마 미사 경본」을 발행하여,
이번 대림 제1주일부터 새 번역판 미사 경본을 사용하기로 경정하였습니다.
아마 기존의 미사에 익숙해왔던 우리들에게는 오늘부터 사용하게 되는
새로운 미사 경문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으로 다가오겠지만,
이는 라틴어 본문에 충실하고 성경에 일치시키기 위함임을 상기시켜드립니다.
사실 익숙함은 편합니다. 무언가를 당연하게 여기게끔 합니다.
이러한 편함은 가끔 준비를 더디 하게 만듭니다.
준비가 소홀하면 자연스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는 영적 죽음입니다.
반대로 새로움은 낯섭니다.
낯섦은 무언가를 다시 보고 확인하게끔 합니다.
다시 보다 보면 예전에는 ‘획’하고 지나가 버렸던 어떤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낯섦은 우리로 하여금 긴장하고 깨어있게 만듭니다.
깨어있음은 곧 살아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기 위해 필요한 ‘깨있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익숙함과 편함에 젖어 집 안에 머물고 있던 종들에게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있으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면 좋겠습니다.
대림 제1주일입니다.
전례력 상 새해의 시작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하듯, 새해를 맞아 바뀐 새로운 전례에 긴장하며
깨어서 참여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자주 떠올리시며, 대림 시기를 보낸다는 마음보다는
대림의 삶을 산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정성스레, 깨어있음으로 순간들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최용감 안젤로 신부 (광주대교구)-
기억과 희망
오늘은 교회의 달력으로 새해(나해) 첫날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대림절은 기다리는 때를 의미하는 말로서 교회는 대림시기 동안
두 가지 차원의 기다림을 준비합니다.
하나는 기억의 차원으로, 과거 2천여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의 차원으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예수님의 성탄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시간에 있어 "오늘"이라는 개념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이
공존하는 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대림절은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예수님과의 재회를
고대하는 기간입니다.
과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계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만났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분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을 알아보고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분을 뵙고
더러는 의심하고 심지어 그분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아, 예수님께서 눈앞에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요?
2천여 년 전 예루살렘에 있었던 일은 과거, 지나간 일이기에
지금의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과연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께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부하십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깨어있어라."
우리는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과거의 일을 교훈삼아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을 알아 뵙고
그분께 믿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희망해야 합니다.
시메온이 그랬던 것처럼,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그리하였던 것처럼…
희망의 끊을 놓지 않고 기다렸던 이들이 예수님을 만났었고, 주님의 은총을
얻어 누린 이들이었습니다.
기다림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기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쁨은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이의 몫입니다.
-신장호 스테파노 신부 (대구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