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도

2017. 12. 4. 오전 6: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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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도

 

 

오늘 복음 말씀에서 주인은 자신의 종들을 '착하고 성실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평가합니다. 주인은 그종이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는 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성실했는지를 보았습니다. 성실한 종은 착한 종으로, 게으른 종은 악한 종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바라보시는 것이 아닌 얼마나 성실했는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성공이 아닌 성실을 하느님께 드려야 합니다. 허나 '성실'이란 것은 어감만큼 달콤하거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지난 목요일은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있었습니다. 많은 수험생들이 이날을 성실히 준비하며 공부해왔습니다. 하지만 성실과는 별개로 그 성실이 보답 받는 이들도 있고 보답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들 열심히 준비하였지만 어떤 이들은 대학에 합격하고 어떤 이들은 떨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성공은 성실함을 필요로 하지만 성실함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가르침과 가치는 미래가 불투명한 성실보다는 보다 명확하고 보장되어진 성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그런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성공보다는 성실을 보신다.’같은 이야기는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성실의 참된 가치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 있어서 성실한 이유는 성공을 위해서, 즉 무엇인가를 대가로 얻기 위해서입니다. 허나 예수님의 성실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 분은 어떠한 대가도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피를 흘리실 만큼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보시는 성실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성실함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어떠한 대가도 성공도 바라지 않는 성실함. 그것은 진정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성실은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기에 성공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성실이 성공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성실함은 그 자체로 참된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 성실함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의 주님이십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저의 구원 때문도, 벌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당신께서 온갖 모욕과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써 저를 온전히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의 주님이십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천국의 영예도, 상을 원해서도 아닙니다. 당신은 저를 먼저 사랑하시고 저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저를 온전히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최영록 아브라함 신부 (청소년사목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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