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함으로써 하느님 아버지와 같이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요?
작은 것 하나에도 쉽게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인데 말입니다.
지난 2003년 무고한 시민 21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씨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인간의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참혹한 행동으로 전국을
공포로 몰아 넣었습니다.
당시 하루아침에 유영철씨에게 노모와 사랑하는 아내, 4대 독자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고정원 씨가 있었습니다.
고정원 씨가 루치아노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지 열흘 만의 일이었습니다.
2007년 10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단상에 선 고씨는 성호경을
긋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입을 열었습니다.
애써 입을 여는 그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눈물까지 보였지만
고씨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호소했습니다.
"사형제도는 범죄를 막지 못하는 공동의 책임을 가족들에게만 지우는
무자비한 제도입니다.
하루빨리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모순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당시 일가족을 잃은 후에도 오히려 유영철 씨를 위해 탄원서를 내고
사형 제도 폐지에 앞장서 온 고씨는 유영철씨를 양아들로 삼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에 어떠한 한계나 제한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먼저 그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목숨까지 바치는 사랑을 드러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함을 받아 반역자의 한 사람처럼 십자가에 달리셨어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한없이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용서의 기도를 바칠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어 사랑한다면,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목숨을 거는 사랑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기에 우리의 마음은 턱없이 좁고 깊이가 낮아 보입니다.
고정원 씨의 일화에서 우리는 신앙의 힘, 신앙에서 비롯된 사랑과 용서의
위대한 힘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내가 죽도록 미워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움의 근원은 어찌 보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용서가 힘겹다면, 우리는 먼저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모든 참된 사랑과 용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큰 사랑과 큰 용서가 힘겹다면 작은 사랑과 작은 용서를 시작하십시오.
작은 사랑과 작은 용서가 쌓여 결국 큰 사랑과 큰 용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정재호 안드레아 신부(대화마을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