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작은 양떼야."(루카 12,32)
통계에 의하면 일본 가톨릭 신자는 인구 대비 1% 미만이라고 합니다.
일본 국민을 어림잡아 1억3천만 명이라고 본다면,
일본의 가톨릭 신자 수가 130만 명 미만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한국 교회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자란 저로서는, 한국가톨릭 교회가
모든 교회의 기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만, 제 관점에서 볼 때
일본 가톨릭 교회의 모습은 사정이 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물론 일본교회 역사 안에서도 수많은 순교자를 비롯한 신앙의 선조들,
특히 약 450년이라는 가톨릭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일본 대부분의 교회가
고령화된 모습을 보면서, "이 모양 이 꼴이 될 때까지 이 나라의 사제들은,
신자들은 복음선교를 위해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요코하마에 살고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6년전, 첫 주임신부로
부임한 곳이 야마나시현(山梨?)이라는 곳에, 교적 신자 수 약 300명 정도의
규모에 자그마한 시골에 위치한 니라사키(?崎)라는 성당이었습니다.
관할구역 안에 총 4개의 시(市)를 포함할 정도로 사목구역이 넓었지만,
매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는 어림잡아 5~60명. 물론, 사무장님도,
관리인도 없으며, 식복사님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사제가 관리인이고 식복사이며, 사무장님을 대신해서 몇 분의 신자분들이
돌아가면서 성당 행정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족적인 공동체"라는 말보다는 "형제적인 공동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니라사키 성당은 정말로 가족과 같은 그런 성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임한 뒤로 6개월 후 한 명의 신자가, 또 일 년이 지난 후
한 명의 신자가 성당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이유야 말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부임한 후 새롭게 영세를 받고, 쉬고 있던 신자가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한 기쁨도 있었지만, 저로 인해서 두 명의 신자가 신앙생활을 포기했다는
그 사실이 큰 상처로 다가왔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미성숙과 사목적 교만을 깨달았고, 지금도 가끔 그 두 분의 신자가 다시
하느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들 작은 양떼야"(루카12,32)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꼭 일본 교회를 향해서, 저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신앙의 뿌리를 깊숙이 내리지 못하고 잔바람에도 가지가 꺾이고 마는,
여리며 상처받기 쉬운 존재. 이런 우리들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루카 12,32)
삶의 방식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지만, 주님 안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기에
"믿음으로써"(히브리서 11,8.9.11.17)우리는 한 가족 · 한 형제이며
주님의 자녀로 불리움 받은 소중한 양떼들입니다.
-이병헌 베드로 신부(해외파견 요코하마 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