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자비의 특별 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우리를 통해 드러나기를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비란 무엇입니까?
말뜻대로라면 기쁨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슬픔이 있으면 함께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나의 것을 그에게 주는 것' 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러한 자비에 이르는 여정에 대해 말해줍니다.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이는 자비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폭력이 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무한한 소비욕구를 미덕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만큼이
나에게 주어진 '정당한 봉급'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재화를 얻는 과정과 방법이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그 재화의 독점적인 소유와 이기적인 사용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다른 삶을 강탈하게 되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폭력에 동조하게 되는 이상한 상황에 있는 것이죠.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정의는 무엇인가를 교환할 때에 그것이 같은 가치를 갖는 것인가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그가 받을 마땅한 몫을 그에게 주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인간의 노동은 마땅한 몫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공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비인간적인 경제 구조 때문입니다.
가진 자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그것이 '최대한의 선'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 외에, 하느님 백성인 수많은 생명들의 몫은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라고 말합니다.
마땅히 받을 몫으로서 그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그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자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떻게 드러나는 것입니까?
우리는 세상의 많은 아픔들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나 별것 아니라는 마음이나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마음이나 더욱더 기술이 발달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폭력의 문제나 정당한 몫에 관한 정의의 문제는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타인의 아픔이 어떤 구조에서 시작되는지 공감하지 못하면,
저절로 편하게 별 것아닌 듯이 누군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비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이겠지요.
어떻게 보면 자비로움은 일종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능력이겠지요.
자비의 특별 희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통해 드러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최재영 세례자 요한 신부 (구리 Exodus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