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계산법
지난날을 돌아보면 아득합니다.
저 벌판을 어떻게 살아 왔을까.
저 돌밭을 무슨 힘으로 걸어냈을까.
저 자신도 어리둥절합니다.
뭘 하나 똑똑히 할 줄을 모릅니다.
사실입니다.
특히 계산법이 아주 엉터리입니다.
한국이나 외국에서도 나머지 계산을 잘 알지 못해 큰돈을 주고 거스름돈을
주는 대로 받아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영수증도 받지 않고 덜컥 돈을 주고는 낭패를 보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삶의 기본 자격을 상실한 거지요.
자식들 보기에 영 얼굴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저를 황당하게 일 저지르는 어린아이처럼 대할 때도 있습니다.
나 이 때문도 있겠지만 물러터진 감성이며,
야무지지 못한 성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한 것이 참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나이까지 그래도 이만큼 살아낸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아니 기적입니다.
돈 계산은 두고라도 정리정돈이며 미루는 습관이며,
어디 총명한 곳이 하나 없는 제가 이렇게 살아왔고 살아가는 저를 보면,
때로는 내가 나를 두고 참 이상하고 야릇하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래 어떻게 살아왔을까.
이런 데면데면한 몰골로 살아왔는지 두 손을 모으고 생각해 봅니다.
하는 꼴을 보면 저도 저에게 조마조마합니다.
아이고, 맙소사!
얼굴을 가리고 황당한 저에게 말합니다.
어떻게 살아왔을까.
분명 확실하게 느껴지는 힘이 있습니다.
스스로 나 자신을 보면 하느님의 사랑이 증명됩니다.
그분이 계셨던 겁니다.
10만원만 넘어가도 계산을 제대로 못해 일, 십, 백, 천만하고 세어봐야
겨우 아는 계산법으로, 그것도 많아지면 읽지도 못하는 계산법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결혼시키고 늦은 공부를 하며 대학교수가 되고,
생활인으로 살았다는 것은 뒤에서나 앞에서 하느님이 일으켜 세우며 결핍을
채워주시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가족들이 힘들었겠지요.
그만큼 주변 사람들이 힘들었겠지요. 저의 불편만 생각했지만,
제가 비틀거릴 때 사실은 가까운 사람들의 고충이 크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저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하느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하느님이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계신다는 증명이지요.
기적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도 눈부시게 나타납니다.
보십시오.
작지만 자유로운 내 공간의 잠자리가 있고,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 행복하게 웃고 있다는 것은 보통 은총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감사의 표현법에도 저는 부족합니다.
제 일생 감사의 표현을 하려면 저 아프리카에 있는 천 명의 아이라도 살려내야
하지만, 제 감사는 아직도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새해엔 영혼이 철들어 감사 표현에 능하면 좋겠습니다.
생색내지 않으시고 조용히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계산법처럼 말입니다. 아멘.
-신달자 엘리사벳(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