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축하합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다른 어떤 인사 보다도 이 말처럼 오늘과 어울리는 축하인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습니다" 하고
인사하면 다른 사람은 "그분께서는 정말 살아 나셨습니다." 하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분께서는 살아나셨고, 정말 살아나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자녀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해 성삼일을, 특히 부활 성야 미사를 성대하게 지내면서
우리는 서로 축하의 인사를 나눕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그분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그분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분의 부활을 축하합니까?
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나와 별로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기쁨이 나에게 생긴 좋은 일만큼, 나와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생긴 일만큼 기쁘지도 않을뿐더러 저처럼 속좁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때때로 질투로 변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부활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분과 깊은
일치의 관계를 맺어야 할 뿐 아니라 나도 실제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그분과 함께 부활하는 사람들만이 그분의 부활을 진심으로 기쁘고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 묻히신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도 스스로 부활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느님께서 우리도 함께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는 싫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은 참으로 어리석은 욕심이고 헛된욕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덤에 묻히신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듯이 그리스도 때문에
스스로 죽은 우리들을 부활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의 긴 터널을 자기희생과 속죄와 참회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스스로 죽었고 그런 우리들을 하느님께서 새 생명으로
부활시키셨으니 어떻게 오늘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 태어난 우리들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도들에게 그랬듯이, 사도들이 가는 곳 어디에서나 그랬듯이
기쁜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부활을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이석재 바오로 신부(덕소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