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빛이 이긴다

2015. 4. 14. 오전 6: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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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빛이 이긴다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 "빛과 어둠이 서로 만나면 언제나 빛이 이긴다." 그 말에 시큰둥한 사람들에게 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밖은 어두운데 여러분은 빛이 있는 밝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때 창문과 문을 연다음 여러분은 캄캄한 어둠을 빛이 가득한 공간으로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공간이 어두워집니까? 공간 안에 있는 빛이 침입한 어둠에 흡수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둠이 빛 안에서 사라집니다. 또는 반대로 상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두운 공간에 있습니다. 바깥에는 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앞에서 처럼 모든 창문과 문을 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빛이 안으로 들어와 어둠을 몰아낼 것입니다. 빛과 어둠이 서로 만나면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언제나 빛이 이깁니다. 그러기에 모든 신화는 어둠은 빛이 되지 않으려고 빛을 피한다고 말합니다." 언제나 빛이 이긴다! 이 말은 가망 없어 보이는 역사의 진행 과정이나 현재적 사건과 관련하여 큰 위로와 희망을 준다. 우리 삶에 부조화를 가져다 주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여기서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서 빛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촛불을 보면 알 수있다. 초는 우리 삶을 탁월하게 가리키는 상징이다. 초가 똑바로 서 있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초는 불꽃을 내며 자신을 태운다. 초는 소리 없이 곧 자기 없이(이 둘은 종종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며, 이유와 목적을 묻지 않고, 삶의 심오한 의미는 타인을 위한 빛이 되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프리메이슨이던 의사의 아들 자크 뢰브(Jacques Loew)는 니자(Nizza)에서 이름난 변호사였다. 밤이면 술집에서 살다시피 하던 그는 가톨릭 신앙을 찾아 세례를 받았다. 레옹 블루야(Leon Bloy)의 책들이 그의 영혼을 변화시킨 것이다. 나중에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노동 사제로서 마르세유 항구 노동자로 일하다 몇 년 전 종교 공동체를 세워 스위스 프리부르에서 살고 있다. 필자는 자크 뢰브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항구 노동자로 일했던 날들을 회고하면서 한 동료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노동자가 한동안 일터에 나타나지 않아 그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며 미사를 돕던 열아홉 살 된 아가씨를 그의 집에 보냈다. 그는 돌보아 주는 이 없이 숙소 한 구석의 짚으로 채워 만든 요에 먹지도, 씻지도, 면도도 못한 채 누워 있었다. 온몸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날마다 그를 찾아갔다. 음식을 가져다 주고 방을 청소하고 그를 돌보았다. 그러나 그는 감사하기는커녕 그녀가 조금이라도 늦게 방문하면 욕을 해댔고 온갖 심부름을 시켰다.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 그를 찾아갔다. 그녀는 그에게 왜 그렇게 사는지 묻지 않았고, 언제나 친절했으며, 마치 그런 일을 처음 당하는 것처럼 도움을 베풀었다. 이처럼 침착하고 빛나는 태도는 분노에 가득 차 있던 그 노동자의 마음을 열게 했다. 그는 작은 선물을 마련하여 아가씨에게 주면서 "이것은 네 스승을 위한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런 일은 인간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아가씨가 그 모든 어려움에도 끊임없이 방문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태도에서 이기적 자아가 죽어 바오로 사도가 '사랑의 송가'(1코린13,1-13)에서 묘사한 소리 없는 사랑으로 변화된다. 이 송가에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언급되어 있다. 그 밖에 사랑에 대해 더 언급된 것이 있다면 이 송가의 변형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을 둘러싼 어둠 때문에 한탄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오히려 자신의 빛으로 어둠을 밝혀야 한다. 이런 사랑은 우리한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랑이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에 대한 직감력이 그 노동자에게 있었다. "이것은 네 스승을 위한 것이다." 이 스승은 이렇게 가르친다. "우리는 하느님한테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가 누구든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조건 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면 신앙인이 취할 행동은 무엇일까? 하느님한테 사랑을 받고, 그런 다음 이유와 목적 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런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기에 사람들을 하느님께 이끈다. 토리노의 빈민굴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청년이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손거울로 햇빛을 모으고는 거리 응달에 자리한 오래된 다락방 창문으로 햇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그 청년은 대답했다. "저 방에 병든 제 형제가 누워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조금이나마 빛과 기쁨을 주고 싶습니다." 토리노의 이 청년은 분명 빛의 형상이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 상징적 형상이기도 하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열린 하늘의 빛을 모아 삶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빛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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