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상 기도의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의 모습을 한 번 그려봅니다. 16세기 스페인의 수도원, 침묵이 흐르는 방에서 무릎을 꿇거나 자리에 앉은채 적막한 정원을 내다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아경에 빠져 있는 데레사 성인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서전이나 다른 서적을 통해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에 사로잡혀 기도하거나 숙고하는 시간, 그분이 자주 언급한 침묵 속에 잠길 수 있는 장소를 그가 과연 얼마나 찾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으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현대 여성들이 많은 요청 가운데 살아가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515년 스페인 아빌라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데레사는 21살에 수도원에 입회하였습니다. 해이해진 수도원을 개혁하고 철저한 고행과 관상으로 참된 수도자가 되고자 했던 데레사 성인은 동료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반대와 박해를 받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열정과 불굴의 투지로 관상 수도회를 지켜나갔습니다.
그의 뛰어난 영성이 인정받고 그녀의 개혁이 받아들여지면서 그녀의 뜻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또 스페인의 관상에 대한 열정이 아빌라를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데레사 성인은 40대 중반부터 20여년에 걸쳐 5권의 영적 고전을 썼는데 그 중 [완덕의 길]과 [영혼의 성]은 자서전입니다. 데레사 성인은 책을 저술하면서도 오랜 역사를 지닌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위해 힘든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그 일에는 영적으로 상당한 용기와 지도력이 필요했습니다. 더욱이 데레사 성인은 가르멜 수도회의 세부적인 일상생활 지침에 관여해야 했고, 12개 여자 수도원과 2개의 남자 수도원을 개혁하면서 교회 단체와 정치가들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역이나 고위 성직자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혀 소송을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며, 새 수도원을 세우려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한번도 건강이 좋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청소년기에 심하게 앓았던 병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고생을 했고 어렸을 때는 혼수상태에 빠져 여러 날을 보냈으며 몸이 마비된 채 몇 년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데레사 성인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수도생활이 요구하거나 실천한 것보다 더 나은 '완덕의 길'을 따르고자 했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수도원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가 많은 어려움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하고자 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 그는 기도했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며 온갖 수단으로 낙심시키려고 할 때도 기도했으며, 자신이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지 사탄의 인도를 받는지 알 수 없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권위를 지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사탄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몰아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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