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의 증거자 최양업 신부(3) - 사목자로서의 성격

2010. 7. 2. 오후 4:39:24

글자
최양업 신부님
 사목자로서의 성격
 
 



최양업 신부는 조선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사제가 된 사람이다. 그의 생애는 오랫동안 김대건 신부의 활약과 순교에 묻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앙을 증거한 관점에서 볼 때 김대건 신부의 순교는 전형적인 피의 증거이고, 최양업 신부의 사목 활동은 모범적인 땀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3. 최양업 신부의 사목자로서의 성격


땀과 끈기로 이어지는 최양업 신부의 사목활동은 멀고 험악한 공소등 전교가 어려운 지역의 전교를 맡아야 했으므로 해마다 5개 도에 걸쳐 있는 100개가 넘는 광활한 전교 지역을 돌아야 했기에 7,000리를 걸어야 했으며, 한 마리의 양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사목 정신은 신자가 둘이나 셋밖에 없는 공소도 마다하지 않고 방문하였고, 다섯 가구의 신자집을 방문하기 위해 사흘길을 걷기도 하였다.

그는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 특히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사람들을 찾아 다녔고 위험한 구석에 혼자 있더라도 침착한 마음으로 고요히 성무를 집행하였다. 이러한 어려움 중에서도 자기 자신이 받는 고통은 잊었고, 신자들의 처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신자들은 최양업 신부를 얼마나 은혜롭게 생각하며 따랐는지 마치 목마른 양떼들과 착한 목자의 정경을 연상케 한다. 선교사들은 은근한 우월주의적 자세와 병약과 언어문제로 인해 사목활동에 제한적이고 광범위하지 못했으며, 그들은 비교적 어렵지 않은 전교 지역을 맡았었다. 그래서 조선에 대한 이해와 판단은 단편적이고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으며 선교 지역의 문화 순응에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함께 사목했던 최 신부는 조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선교사들에게 선교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목자의 자세를 지니도록 노력해줄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방인신부로서 오는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는데, '페레올 주교 사건'과 '사본문답에 대한 불합리한 주교의 처사' 등 선교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고뇌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들에게 헌신적인 뒷바라지는 물론 선교사들의 약화된 건강이 자신의 부덕(不德)에 기인한다고 할 정도로 뿌리깊은 형제애와 겸손된 삶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전교의 어려움과 선교사들과의 갈등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자료 수집, 교리서 편찬, 천주가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 하였고 착한 목자로서 살아 있는 신앙을 전한 사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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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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