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 미사 시대(8~11세기)

2005. 12. 20. 오전 11:19:33

글자

 완성된 로마 전례가 8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유럽 대륙의 프랑크족과 게르만 민족에게 수용되면서 미사 전례

 

도 조금씩 변화되어 갔다.

 

제대, 제물, 복음서에 대한 분향 및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에 대한 분향이 800년 경에 도입되었다. 미사를 바칠

 

준비로서 사제가 개인적으로 하던 「고백의 기도」를 11세기부터는 공적으로 하게 되었고, 사제는 모든 신자에

 

게 사죄를 선언하였다. 신앙고백인 「니체아신경」이 1014년에 처음 로마 미사에 도입되었다. 또한 사제용과

 

신자용의 크고 작은 두 종류의 제병을 사용하게 되어 영성체 전에 빵을 떼어 나누던 것이 형식적이 되었다.

 

이 시대에는 미사의 공동집전을 하지 않게 되고, 사제들 사이에 미사를 개인적으로 거행하는 신심이 성행하게

 

되어 옆 제대 수가 늘어났다. 사제는 옆 제대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어도 대면하지 않았으며, 각 제대 배후

 

에는 성상이나 성화와 조화를 이루도록 장식한 벽이 세워지게 되었다.

 

또한 미사 중에 소리를 내지 않고 혼자 속으로 외는 기도가 많아졌다. 심지어 감사기도인 「로마전문」

 

(Canon)도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침묵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기도하

 

였다. 제대가 점차 신자석에서 멀어져 사제석과 신자석 간에 거리가 생겼으며, 신자는 무릎을 꿇고 성체를 영하

 

게 되었다.

 

이처럼 이 시대는 객관적이고 공동체적인 교회의 신앙을 나타내기 보다는 주관적인 신심의 대상으로서 미사를

 

이해하게 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