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 1주

2005. 12. 1. 오전 10:06:27

글자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교회는 대림절에 두 가지를 기다립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즉 성탄을 기다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즉 재림을 기다립니다.

복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기다린다는 것은 한 편으로 고통입니다.

오죽하면 “기다리다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기다림이 너무 길면

지치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나중엔 원망까지 합니다.

기다림에는 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유로 깨어 기다리라고 당부하셨지요.


어떤 부자 집주인이 멀리 어디로 떠나가게 되어,

자기 종들을 불러 이렇게 부탁하였다:

여봐라, 내가 멀리 떠나가게 되었는데, 안심이 안 되는구나.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내가 없더라도, 너희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안을 잘 지키거라. 알겠느냐?

특히 문지기, 너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알겠느냐?

내가 언제 올지 모르겠구나.

내가 올 때, 만일 너희들이 깨어 있지 않고, 제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고,

흥청망청 얼간이처럼 지내서야 되겠느냐?  뭔 소린지 알겠느냐?


위에서 기다림에는 어떤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물리적으로 2000년이 지났습니다.

집주인이 잠깐, 아니 며칠, 아니 몇 달 정도 떠난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이렇게 2000년 동안 자리를 비운 대서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기다림에 지쳐서 나자빠지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울다가 지쳐서 정신없이 잠이나 자지 않겠습니까?


옛날, 예수님과 당시 제자들은 곧 종말이 오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종말 임박 사상이 팽배해 있었으니까요.

곧 끝장이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

이제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이제 곧 심판이 온다,

이제 지구는 박살나고, 새로운 지구가 설 것이다.....

이게 당시의 사상이고,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도 여러 번 언급하셨지만,

새 하늘과 새 땅, 이른바 천국, 하느님 나라는 종말에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먼 길을 떠난 집주인을 언제 올 것인가 하고 기다릴 것이 아닙니다.


집주인이 먼 길을 떠났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생각하고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무작정 억지로 그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거라고 무작정 억지로 깨어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분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고

우리 일을 차분히 하면 됩니다.

그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교회라는 믿는 이들의 모임을 통해서도,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빵 나눔이란 전례를 통해서도,

-봉사와 사랑 실천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도,

-소외된 사람들의 영혼을 통해서도,

-용서하고 화해하는 행위를 통해서도......


대림, 물론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기다리다 지치지 말고,

기다리다 울지 말고,

기다리다 성질내지 말고,

기다리다 원망하지 말고,

기다리다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차분히 자기 일을,

성실히 자기 일을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생각의 변화가 엄청난 결과를 얻게 됩니다. //풍우 신부님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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