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로마 교황의 권위를 점차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전례에서도 로마 교황 미사가 모범으로
서 각지에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교황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었다. 이 교황은 로마
의 주교로서 부근에 있는 성당을 순회하였는데, 이를 위해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의 지정 성당(Statio)이 정해지
고 이것이 연중행사로서 전례력에 점차 고정되었다.
이런 이유로 이 시대에는 주교의 입당 행렬에 따른 입당노래가 자연적으로 발달하였고, 봉헌 노래와 영성체 노
래도 봉헌 행렬과 영성체 행렬을 하는 신자들의 능동적 참가의 노래로서 형식이 점차 갖추어지게 되었다.
또한 시작예식에 「크리스떼 엘리이손」(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이 첨가되고, 대영광송(Goloria), 본기
도, 예물기도가 만들어졌다. 감사송과 감사기도(성찬기도)가 구분되면서 감사기도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노래
인 「상뚜스」(거룩하시도다)가 첨가되어 6세기에는 널리 불려지게 되었다.
7세기 말에는 교황 세르지오 1세에 의해 빵(성체)을 나눌 때 계속해서 부르는 노래로 「아뉴스 데이」(하느님
의 어린양)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감사기도 안에 역대 교황의 이름이 전 교회에 열거되고, 교회 공동체를 위해
전구를 청하고자 사도들과 당시 로마에서 존경받던 순교자들의 이름이 첨가되었다.
그리하여 7세기에 이르러서는 시작예식과 마침예식을 비롯한 예물준비 예식, 영성체 예식이 대부분 정착되어
현행 미사 전례와 비슷한 행태를 갖추게 되었다.
가톨릭 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