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심기도(CENTERING PRAYER)란?

2005. 9. 6. 오전 11: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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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심(向心)기도란

 

초기 교회 때 부터 그리스도교 안에 있어온 관상기도의 한 형태로 예로 부터 해오던 방법에 어떤 형식과 구조를 첨가해서 현대인이 하기쉽고 또 알아듣기 쉽도록 만들어진 기도입니다.

 

♡향심기도(CENTERING PRAYER)의 의미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께로 가기 위하여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향한다는 뜻입니다.

 

신비가들은 하느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에 현존하신다고 말합니다.그래서 하느님을 찾기 위해 멀리 갈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세례의 은총으로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 안에 현존하시면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이렇듯이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자신의 내면으로 즉 우리 존재의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는 기도가 향심기도입니다.

 

♡향심기도의 목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하느님과 일치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현세에서 그 일치가 일어나든 우리가 죽은 다음에 일어나든 우리는 결국 하느님과 만나고 일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관상기도는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도와 주는 기도이며,가장 쉽고 단순한 관상기도가 향심기도입니다.

 

♡향심기도는 왜 필요한가?

 

우리는 의식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쓰면서 살아갑니다.즉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나의 의식속에 있는 생각들 감정에 따라 살아갑니다.우리가 이 표면적인 의식에 지나가는 생각과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 때 진정으로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도할려면 세속에 대한 관심에서 떠나고 우리의 표면적인 의식 즉 생각과 감정 등의 의식에서 떠나고 우리가 가진 하느님에 대한 idea 와 관념에서 떠나야 합니다. 이러한 것에서 부터 떠날 때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내면 깊은 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힝심기도는 세속의 관심에서 떠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등에서 떠나도록 도와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어디나 계시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초월자 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인간은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머리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고 창조주이시며,정의로우시고 자비하시며,사랑이시고 살아계시며,섭생자이시고 바위이시며,성채이시며..... 이와 동시에 우리의 모든 idea 와 개념을 초월하시는 분 이십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하느님은 사실은 하느님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idea 와 개념일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idea와 개념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실은 우리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며 알 수 도 없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순간의 머리로 알아지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우리의 지식을 초월하는 지식 ,사랑으로 하는 지식이라 하였고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은 으로만 안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려면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idea를 떠나보내고 세속적인 관심사와 의식 표면에 있는 감정과 생각을 떠나보낼 때 비로소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무지의 상태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깊은 내면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어떤 지식,이성과 개념을 초월하는 어떤 지식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지식은 도저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지식이지만 확신있는 지식 ’아주 깊은’ 지식이 됩니다.이러한 지식을 ’무지의 지식’ 앎 을 포기한 지식 하느님에 대한 깊은 지식이라 신비가들은 불렀습니다.

 

향심(向心)기도는 세속에 대한 관심에서 떠나고 하느님에 대한 개념과 idea에서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기도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그 수준이 매우 깊습니다.

우리가 꿈을 꾸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꿈에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표면적인 의식과 같은 깊은 수준의 의식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이성적 판단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이나 가치관, 습관,고정관념,그리고 감정등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즉 우리의 의식의 표면에 있는 생각과 감정들은 사실은 깊은 의식 수준에 자리잡고 있는 욕구와 고정관념과 감정등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특히 어렸을때,만족하지 못하였던 욕망,혹은 지나치게 만족하였던 욕망들,우리가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발전 시켰던 행동 양식들,억압했던 정서와 상처들 또 가정,학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무조건적으로 받아 들였던 그 집단의 잘못된 가치관들 그리고 이성이 발전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하여 또 남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고도의 심리 방어 등이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것이 자신도 모르게 행동과 감정을 지배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자아’를 토머스 키팅 신부님은 거짓자아 라고 부릅니다.이 ’거짓 자아’를 바오로 사도는 ’외적자아’ ’낡은 자아’or ’낡은 인간’ ’외적 인간’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거짓 자아는 우리의 삶을 불행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거짓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행복하게 그리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 입니다.이 거짓 자아가 인간에 만연된 영적 질병이며,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가 빚어낸 결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거의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거짓 자아에 지배를 받고,또 거짓 자아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거짓 자아에 집착하여 자신의 거짓 자아를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자신의 거짓 자아 즉 영적 심적 질병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화와 성화와 성숙의 길이고 ,거짓 자아에서 해방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일치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변형으로 이루는 일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이 점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치로 가는 과정을 ’변형으로 이루는 일치’라고 합니다.즉 우리가 거짓 자아에서 해방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주신 ’참 자아’로 부활하면 하느님과 ’변형적 일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세례의 은총으로 이미 우리안에 와 계신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면서 누구에게나 관상의 선물을 주셨습니다.그리스도인 누구나 하느님과 일치하는 관상의 선물을 받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의 가지고 있는 거짓 자아 때문에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지 못합니다.그러므로 이러한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고 장애를 제거하는 작업이 관상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향심(向心) 기도는 거짓 자아에서 해방되어서 관상의 선물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심적 영적 기도를 준비시켜 주는 가장 쉬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다 들어 주실 것이다.(마태오 복음 6.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세속의 관심에서 떠난다는 것이요.

문을 닫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의식의 표면을 지나가는 생각과 감정들을 의도적으로 떠나 보낸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진정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네 하느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은 인간적인 생각과 관념을 초월하여 하느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느님이라고 하시지 않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하느님을 친밀한 아버지,우리를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로.지극히 다정한 분이시므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단 둘이서 친밀한 친교를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골방이란 고독한 곳 즉 세상의 관심에서 떠난 자신의 내면을 뜻합니다.예수님께서도 아버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고독한 곳, 한적한 곳을 자주 찾으셨습니다.

 

향심(向心)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수련입니다.

 

향심 기도는 눈을 감고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떠나보내고 표면의 의식 수준에서 지나가는 생각과 감정들 즉 분심 장면들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도록 만들어진 기도입니다.그래서 더 깊은 의식의 수준, 더 깊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도입니다.

이렇게 하여 자신의 깊은 내면에 들어가면,거기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은 하느님의 영 즉 성령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그러므로 향심 기도를 오래 수련한 사람에게서는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즉,더 사랑하고 더 기쁨으로 살고 더 평화로우며 더 인내하고 더 친절해지며 더 선행도 베풀고 더 진실되게 살고 더 온유하고 더 절제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떤 지향을 가지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향심 기도를 할 때에도 어떤 지향을 가지고 합니다.

향심 기도할때에는 우리안에 계시는 하느님께 나자신을 열어 들이고 내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 활동하심에 승복하겠다는 지향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다시 말하면 향심 기도란 하느님께서 내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동의한다는 지향을 가지고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결혼할때 그리고 수도생활이나 성직생활을 시작할때 서원을 합니다.

이 서원이 바로 우리의 지향이며 의지입니다.

지향이 갖는 힘은 매우 큽니다.

이 지향때문에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있어도 결혼 생활, 성직이나 수도 생활을 계속합니다.향심 기도에서도 지향이 매우 중요합니다.지향이 기도의 전부라는 말도 합니다.

 

우리의 지향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우리가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한다는 지향을 가지고 기도하면,우리의 지향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현존하시면서 활동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내안에서 활동하시면서 우리의 삶이 성령이 이끄시는 삶이 되게 해 주시고 우리를 하느님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시고 마침내 우리를 당신과 일치시켜 주십니다.

 

즉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

진복 팔단의 삶.

그리고,세속안에서 천국을 누리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향심(向心)기도는 어떻게 하나?

 

첫단계(기도의 준비)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심에 동의한다는 지향을 상징하는 ’거룩한 단어를 선택한다’

 

둘째단계(기도의 시작)

편안히 앉아 하느님께서 내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심에 동의한다는 지향을 상징하는 그 거룩한 단어를 우리의 의식 속에 아주 부드럽게 불러들인다.

 

셋째단계(기도의 계속)

기도를 하는 중에 어떤 생각(분심,잡념)이 우리의 의식 속을 지나감을 알아차리면 아주 부드럽게 그 거룩한 단어로 돌아간다.

 

넷째단계(기도의 끝)

기도가 끝날 때 눈을 감고 잠시(2-3분)침묵 속에 머문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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