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증인(165회훈화)

2009. 5. 1. 오후 5: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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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증인

1930년 초 미국은 심각한 대공황을 격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클레어린스 목사가 공장이 밀집된 지역의 한 흑인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극빈자들이었으며, 60% 이상이 실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은 힘과 희망으로 넘쳐 있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절망의 빛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클레어린스 목사는 설교를 중단하고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대공황입니다.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실업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이 그리 즐겁습니까?”

그때 한 교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최고의 희망입니다”

실날같은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던, 말 그대로 ‘대공황’의 혼란스러운 어둠 속에서 그들이 붙잡은 것은 예수그리스도라는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사도4,33)

박해 상황에서도 저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유일한 희망으로 붙잡았습니다. 이 힘으로 그들은 부활을 증언하고 큰 은총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들은 ‘부활을 믿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을 직접 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스페인을 떠났다. 사나운 바람과 거센 파도, 보이는 것은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와 하늘뿐·······. 선원들은 분노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식량과 물은 점점 동이 났다. 선원들은 콜럼버스를 붉게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는 스페인으로 귀향하자는 암묵의 협박이었다. 분명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콜럼버스는 태연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절망하는 선원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침반이나 선박의 성능을 믿고 항해를 시작한 것이 아니오.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꿈과 소망일 뿐. 나는 지금 희망의 책, 이사야서를 읽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소!”

콜럼버스로 하여금 모든 것이 끝장난 상황에서도 중도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해 주었던 것은 뛰어난 항해술이 아니라 원대한 꿈 곧 희망이었던 것이다.

지금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희망만이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절망한 사람이 희망을 붙들면 부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차 동 엽 신부님의 신나는 복음묵상 중에서


 

댓글 1

  • 2009년 5월 1일 오후 10:36

    꿈은 희망이고, 희망은 절망의 터널로 스미는 빛입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사도들의 모후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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