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어느 극장에 관객이 초만원을 이룬 상태에서 현란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장 뒤편에서 그만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극장 지배인은 즉시 유명한 배우 한 사람을 무대로 보냈습니다. 관객들이 침착하게 탈출하도록 화재 상황을 차분하게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지금 이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시고 질서를 지켜 한 사람씩 밖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박수만 열심히 쳤습니다. 아무도 화재 소식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극장 건물이 무너지면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인 덴마크의 키르케고르(s.a.kierkegaard)가 남긴 우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갖가지 재난 안에 담긴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유사 이래 재앙이나 재난은 끊임없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희생자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 과연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고 천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면 사고 현장에 있던 그들은 제수가 없었고 살아남은 자는 운이 좋았던 것입니까.
예수님은, ‘갈릴래아 학살 사건’이나 ‘실로암 탑 붕괴 사건’과 같은 참변이 인과응보에 따른 결과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3.1-5) 예수님은 그러한 재난을 살아남은 이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하느님의 절박한 경고 메시지로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죄가 없는 곳에는 벌도 없다’는 원칙 하에, 모든 불행을 하느님의 형벌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릇된 대중적 신앙은 현대인의 의식 속에도 여실히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재앙과 참변이 자신이 지은 죄에 따른 벌이라면 세상에 살아남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이 세상은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을 당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되었으며, 그것이 기록에 남아서 이제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 교훈이 되었습니다.(1코린 10,11) 결국 갖가지 재난 안에는 하느님의 경고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매일매일 전하는 비보는 나와 전혀 무관한 일들이 아닙니다. 파스칼(b. pascal)의 말처럼 올해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사형 집행 유예기간’ 일지도 모릅니다. 더 늦기 전에 진정으로 하느님께 마음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 글 송현 신부
죽음체험을 해본 일이 있으신가요? 저는 어느 피정 중에 죽음을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죽은 몸을 가상하여 직접 관속에 들어가고 밖에서 관에 못질을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체험한 당사자는 관속에 누워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회상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하느님을 말씀에 부합한 삶을 살았는지. 나 자신으로 인해 피해와 상처를 받았을 사람은 얼마나 될지, 희생과 자선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였는지 등을 되돌아보고 묵상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나가 다시 산다면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마음속에 새깁니다.
얼마 전, 나 자신의 영정사진을 직접 마련하였습니다. 언제 하느님께서 부르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영정 사진을 준비한다는 것 또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날 ‘예’ 하며 홀가분하게 따르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단원 여러분들께서도 죽음 체험이나, 자신의 영정 사진을 직접 준비해보세요. 아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많은 변화가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남들이 무겁다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짐을 가볍게 질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코로나19로 인하여 세상 풍숙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상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고,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얼른 손을 잡지 못합니다. 이제 미사에 참례하는 것도 입구에서부터 방역을 해야 하고 성가도 부르지 못합니다. 우리가 매 주일 모여서 기도하고 활동보고 하던 레지오 주회합도 비대면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난국을 지혜롭게 해쳐 나가는 방법은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방역당국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입니다. 극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신사숙녀 여러분, 지금 이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시고 질서를 지켜 한 사람씩 밖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안내하는 배우의 말을 코미디로 받아들여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지난 8월 15일 전광훈 사이비 목사가 방역당국의 경고에도 이를 무시하고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여 거기에 동조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걸려 고생을 하고 사망자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9월은 우리 가톨릭 전례력으로 순교자 성월입니다. 우리는 순교 성인들처럼 목숨을 바쳐 순교는 못해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순교는 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행동 하나라도 겸손하게, 환경을 깨끗하게 보호하는 것 모두가 작은 순교가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순교를 실천하는 우리가 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