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유적지

2017. 9. 22. 오후 8: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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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역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가면 다산 유적지가 있다. 다산은 1762년(임오년 영조 38년)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아버지 나주정씨(羅州丁氏) 재원과 어머니 숙인 해남윤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7세에 시를 창작하였고, 10세부터 과예(課藝)공부를 하기 시작하였고 22세 때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간다. 여러차례의 시험을 통해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게된다. 28세 때 문과에 급제하고 첫 벼슬길에 들어서며 '성설'과 '기중도설'을 지어 수원성을 쌓는데, 유형거와 거중기를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건의하여 많은 공헌을 하게 된다.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서 가난하고 핍박 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했으며, 지방 현감과 군수의 폭정을 고발하여 처벌을 한다.1801년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 받아 유배형을 받게 된다. 셋째형 약종은 옥사하고 약전은 신지도로 유배된다. 9개월이 지난 후 황사영 백서사건이 발생하자 다산은 서울로 불려와 조사를 받고 또다시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기게 된다. 강진에서의 유배기간 동안 500여권의 저서를 쓰게 된다.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모아 교육에 힘을 쓰게 된다. 57세 때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와 목민심서 등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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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문화관

 

.2012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 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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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성 건립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거중기

 

수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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