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당에 새 주임신부님으로 부임하신 강문일 사도요한 신부님께 교우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환영의 말씀을 드리고, 강 신부님을 우리 본당으로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부디 새 주임신부님의 높은 경륜과 깊은 신심으로 본당 교우들을 갈등 없이 신앙으로 잘 이끌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사실 결함 많고 세속적인 신자들이 성직자인 신부님을 바라보는 시각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분이자 예수님의 삶을 살고자 평생을 봉헌하며 사시는 고귀한 분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께 순명하는 마음으로 신부님을 무한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예수님께 바치는 이러한 겸손한 존경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듯 제왕적 자세로 군림하시는 신부님도 계시고, 반대로 겸손하고 공손하게 신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서민적 낮은 자세로 사목하시는 신부님도 계시는데, 어떤 신부님이 교계(敎界)에서 가르치는 사제의 참모습인 줄은 헷갈려 모르겠으나 그저 순진한 신자의 생각으로서 강 주임신부님은 부디 후자이시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특히 작금의 우리 본당 분위기 속에서 새 신부님에 대한 남다른 반가움과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는 지라 오지랖 넓은 한 신자로서 주제넘게 몇 가지 바램을 적어 봅니다.
첫째, 잃은 양을 찾아 나서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었다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버려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8,12~14). 한 마리의 양조차 귀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본당 신자 중에 이러저러한 사유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 냉담에 빠지거나 타 본당으로 나가는 신자들이 적지 않게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따뜻하게 불러 들이시어 상처 입은 곳을 싸매고 치료해 화합과 통합의 공동체로 재건해 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둘째, 신자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녀와 세리에게조차 한마디 책망은커녕 오히려 사랑으로 회개시키셨고, 동족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하시면서도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며 그들을 용서하셨고, 사랑하는 제자들에서 배신 당하셨어도 오히려 끝까지 믿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제자들에게 요구만 하신 게 아니라 당신 스스로 삶으로 사랑을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이성적 사고나 합리적 판단, 신앙적 정신보다는 개인 감정이 앞서 마음에 안 든다고 또는 지시한 말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위 아래도 없이 제자들을 마구 내치고 무리들을 해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화를 내셨던 상대는 말로만 하느님을 외치고 겉치례 전례만 강조하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마태 23,1~12)
본당에는 교적 신자수가 3천여명이고 미사 참례자는 약 1천명입니다. 이들이 구성하는 공동체와 단체는 주님의 사업을 하려고 존재하는 것이지 신부님 한 개인의 취향과 성향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는 본당 신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호소, 어려움를 귀찮다 마시고, 사랑으로 감싸 안고 이해와 배려를 통해 함께 해결하는 길로 이끌어 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셋째, 신자들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라기보다 굶주린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의 깊이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금천구는 서울시 25개구중 재정자립도가 하위권에 머무는 낙후된 지자체입니다. 특히 본당관할 구역인 시흥2동과 5동은 금천구 10개동 중 기초생활수급자가 가장 많이(24.3%) 살고 있는 동네입니다. 우리 본당 신자들의 분포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성직자들에게 시흥5동성당은 직업적으로 보면 유배지나 다름 없고 신앙적으로 보면 청빈한 사목을 하기에 이만큼 좋은 본당이 없을 것입니다.
코드가 맞고 여유 있는 일부 신자들이 유혹하여 맛집을 가게 되거나 값비싼 코스요리를 드시는 기회가 생길 때, 먹고 살기 힘겨워 하는 신자나 가난한 이웃들을 한번 더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가고 싶으실 때, 여유가 없거나 몸이 불편해 가까운 나들이조차 못가는 독거 어르신들을 한번 더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독거 어르신이나 가난한 신자들에게 성당식당에서 매주 국수 한그릇씩 대접해 드리고, 수시로 이분들을 직접 찾아 위로해 주시느라 입술이 터지고 발이 부르터 미사집전하기도 힘겨워 하신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아마도 신자들이 앞다퉈 최고의 보약을 갖다 바칠 것입니다.
네째, 신자들과 언제나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실 때 외엔 언제나 제자들과, 무리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별도의 특실이나 별도의 침대를 마련해 드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도 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손 하나 까닥 안하고 입으로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상석도 없었을 것 같고, 제자들을 종이나 노예처럼 부리거나 무리들을 공짜인력으로 낮춰 보는 독선과 오만의 절정인 "갑질"을 전혀 안하셨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을 발까지 씻겨 주시는 것만 보아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과 겸손으로 대하셨고 하느님 아래 같은 형제로 여기셨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강압과 말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의 실천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주임신부님께서도 지시가 아니라 솔선수범하고,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협력을 요청하고, 보기만 하지 말고 동참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면 고래도 춤을 춥니다.
다섯째, 미사시간이 은혜롭고 감동의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사를 마치면 하느님께 감사하는 은혜로운 마음과 사랑스런 마음을 갖고 기쁘게 성전을 나서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쁨어린 노래도 필요하고, 감동어린 강론도 필요하고, 진심어린 강복도 필요합니다.
못 불러도 전 신자가 함께 찬양노래를 불렀으면 좋겠고, 복음과 독서말씀의 깊은 뜻을 교과서적으로 무미건조하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체험과 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강론이었으면 좋겠고, 비난과 책망, 불평과 불만 뒤에 전례순서상 치루는 형식적 강복이 아니라 칭찬과 덕담과 격려가 깃든 참된 강복을 매 미사시간마다 마구마구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몇 가지 개인적인 바램을 넋두리같이 적어 보았습니다. 이러한 바램이 혹자에 따라 당연한 얘기라 하는 사람도 있겠고, 반대로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강 주임신부님께서는 이 보다 더 좋은 사목을 하실 계획이시며 더 잘 하실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고 시종일관 포용과 소통으로 사랑의 리더십을 펼치시어 5년후 모든 신자들에게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신 성인사제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를 두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끝으로 얼마 전 평화신문에 게재된 어느 신부님의 글귀 하나를 희망삼아 옮기며 글을 마칩니다.
성직자는 ‘가르치는 교회’로, 평신도는 ‘배우는 수동적 교회’로 나누던 시대는 끝났다. 여전히 교회가 누려온 권위의 향수에 젖은 성직자들의 구태의연한 태도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젊고 열정적인 사제와 수도자들이 먼저 듣고, 섬기며, 공감하고 연대하며 친교의 교회를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 2017-08-20 [제3058호, 23면])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