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요맘때쯤, 주일 저녁 해가 뉴엿뉴엿 서산마루를 턱걸이를 하고 황혼이 서쪽 하늘에 멋진 풍경을 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합정동 꾸르실료 회관에서 3박4일의 교육을 마친 형제를 환영 나갔다가 본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접촉 사고가 있었습니다.
끼어들기를 하다가 내 실수로 앞차를 추돌한 사고였습니다. ‘퍽’ 소리에 정신이 아찔하였습니다. 내차 뒤편 유리에는 “초보운전”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던 터라 당황할 수 밖에요. 그리고 그 사고가 첫 사고였거든요.
피해차량에서 운전을 하던 젊은 남자와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렸습니다.
아주머니는 디카를 가지고 접촉되어 있는 차를 향해 후렛쉬를 계속 터뜨리고 있었고 젊은 운전자는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죄송합니다. 운전이 서툴러서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
“예, 그런데 왜 받으시는 거예요?”
“초보라서 끼어들기 하다가, 끼어드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앞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
이렇게 하여 보험처리 하기로 하고 명함을 건 냈다. 당시 가지고 있는 명함이 명함이 없어 할 수 없이 성당 명함을 건 냈습니다. 명함에는 이름, 세례명, 연락처가 기록되어 있었고 여백에
“ 천주교로 오십시오. 마음의 평화를 드립니다. 성심껏 도와드리겠습니다.” 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명함으로 내가 선교를 위해서 만들어 가지고 다니던 명함이었습니다.
상대는 명함을 받아 들더니
“천주교 나가시네요.” 하더니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갈 것입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해어졌습다. 그런데 2일, 3일, 1주일, 2주일이 지나도 아니 한 달이 지도 연락이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연락처도 받아 놓지 않았는데 이제 감사하다고 인사할 곳도 없는 것입니다. 제 차는 앞 범퍼를 교환했지만, 상대 차는 도색이 필요한 상태였거든요.
지금에 생각하니 ‘천주교 신자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 내가 피해자였었다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저녁 그리스토퍼의 ‘하루에 3분 묵상’이라는 책을 보다가 ‘사전에 준비하라’는 제하의 글을 읽다가 생각이 나서 그 날의 일을 다시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름도 모르는 그 운전자에게 복을 내려 주시고 저도 그분의 배려하는 마을을 닮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사전에 미리 준비하라- (그리스토퍼의 3분 묵상 중에서 옮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누구나 교통 규칙을 잘 지키고 안전 운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운전을 배울 때부터 좋은 습관을 길들이는 것이 좋다. 한번 잘못 길들이면 나중에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 운전습관이다.
다음 이야기는 한 여인이 겪은 이야기이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이 여인은 길에 주차해 놓은 자신의 차 옆에서 주차위반 티켓을 끊기 위해서 티켓에 위반사항을 쓰고 있는 경찰을 보고 매우 당황했다.
그녀는 “이 티켓은 20년 이상 운전해 오면서 처음으로 받는 교통위반 티켓입니다.”라고 항의 하듯이 경찰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교통경찰은 인간적으로 안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주차 위반 티켓을 끊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티켓을 그녀에게 주었다. “우리 두 사람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주는 이 주차위반 티켓도 내가 교통경찰이 된 이후 처음으로 끊은 것입니다.”
자신의 현명하지 못한 행동으로 일어난 일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항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는 차라리 앞으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쏟아버린 우유를 아깝게 생각하기 보다는 앞으로 닥칠 것으로 예견되는 어려움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비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상식적인 능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에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루가 21,15)
천상에 계신 하느님, 제가 항상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사전에 심사 숙고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