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마태오 9,1-8

2011. 6. 30. 오전 6: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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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기 22,1-19

그 무렵 1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4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


복음 마태오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저는 어제 휴대전화를 바꾸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나왔을 때 구입했던 3년째 써왔던 휴대전화를 어제 과감하게 바꾸었지요. 제가 가지고 있었던 스마트폰은 참으로 편리한 기능이 많았습니다. 이메일 확인도 실시간으로 할 수 있고, 사진을 찍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곧바로 올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편한 일정관리로 인해 저의 비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밖에도 이 스마트폰의 기능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휴대전화를 바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통화를 하다보면 1분이 채 안되어 끊어지는 현상 때문에 도저히 계속해서 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오래되어서 A/S도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통화기능이 잘 되지 않는 이 휴대전화를 계속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지요.

그렇다면 어떠한 휴대전화로 바꿨을까요? 요즘 사람들이 잘 쓰고 있다는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꿨을까요? 하긴 사람들은 제가 기계에 밝고, 예전에 전산실장까지 했던 경력을 보면서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꿨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요즘 사람들의 80% 이상이 스마트폰을 쓴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플립형인 옛날 구형 휴대전화 모델로 바꾸었습니다. 일명 효도폰이라고 하지요. 숫자패드가 엄청나게 크고, 여기에 만보기까지 달려 있습니다. 주기능은 전화 걸고 받는 것, 문자메시지 밖에 없습니다.

왜 남들이 다 쓰는 스마트폰을 제가 외면했을까요? 휴대전화는 전화와 문자메시지 외의 다른 기능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정관리를 비롯해서 유용할 수 있는 기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조금 불편할 뿐이지, 이것이 주기능은 아니기 때문에 별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생각해보면 어떠한 하나를 구입해도 기왕이면 더 많은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면서 물건을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하지만 그 물건의 주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부가기능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는 물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부가적인 것들을 가장 중요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율법학자들은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라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의문을 답니다. 즉, 그들은 중풍병자가 병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만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가장 기본적인 말씀. 바로 사랑의 말씀과 이 사랑에 기초한 행동들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이유들은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랑에 기초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진정한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겨울에도 움트는 봄이 있는가 하면 밤의 장막 뒤에도 미소 짓는 새벽이 있다(칼릴 지브란).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그러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긴 터널을 지나 맞이한 인생의 봄날>

                                                   양승국 신부

    인간을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의 축복 속에 완전한 인간으로 건강하게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질병이란 혹독한 고통을 허락하시는지요?  

    중환자실에라도 들를라치면,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환우들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 모습이 혹독하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하소연을 합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숨 한번 제대로 쉬어봤으면, 시원한 물 한 모금 벌컥벌컥 마셔봤으면, 밥 한 그릇 뚝뚝 해치워봤으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환우의 삶 역시 기구했습니다. 중풍이 얼마나 도졌으면 자기 스스로는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은 들것에 환우를 실어 예수님 계시는 곳까지 운반해왔습니다.  

    물론 처음 자리에 드러누울 때만 해도 친구며, 친척들이며 자주 찾아와서 말 동부도 해주고 용기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병세가 점점 깊어가면서 그는 점점 철저한 왕따, 천덕꾸러기가 되어 갔습니다.

     그는 하루 온종일 드러누워 천장 바라보는 것이 다였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모든 문제를 누군가의 손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고질병이 오래가다보니 가산도 다 탕진했겠습니다. 식구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빨리 하느님께서 데려가셨으면 하는 마음을 먹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만이 전부였던 중풍병자가 은혜롭게도 치유자 예수님과 대면하는 은총을 입게 됩니다. 환우를 향한 가족들의 큰 측은지심, 그리고 반드시 일어나서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겠다는 치유를 향한 환우의 강한 의지가 마침내 기적을 일구어낸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춥고 어두운 긴 죽음의 터널을 잘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봄날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평화로이 구원의 창가에 앉아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생명의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자비하신 하느님의 업적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중풍병자의 죽음 같은 오랜 병고, 그것이 한평생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지만, 끝까지 잘 견딘 결과 이제 참 하느님의 부드러운 구원의 손길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육체적, 외적 치유뿐만 아니라 영적, 총체적 치유, 완전한 자유와 해방감, 구원을 이 지상에서부터 체험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오랜 질병, 그리고 예기치 않았던 하느님의 개입, 그리고 마침내 은혜로운 치유를 통해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투병생활 뿐이었던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끔찍한 고통을 주시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고통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 끝도 없을 것 같은 고통 같지만, 그래서 쉽게 체념하고 쉽게 포기하는 우리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전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우리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 삶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말끔히 치유시켜주십니다.  

    하느님 편의 예고 없는 방문, 성령께서 주시는 뜻밖의 선물인 치유의 은총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마음을 활짝 열 필요가 있습니다.

     내 병세가 너무 심각해서, 의사도 내놓은 사람이어서, 내가 너무 나이가 많아서, 더 이상 내게 좋은 일이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가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것을 주십니다. 눈물을 거두고 하느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똑바로 서기를 바라십니다. 내면과 외면 모두, 육체와 영혼 모두 온전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상처가 덧나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부끄럽다고, 창피스럽다고 상처를 꽁꽁 동여매고 감춰두면 되겠습니까? 빨리 상처를 의사에게 보여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에 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밥 먹듯이 상처를 주고받는 우리들, 갖은 병고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들이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지속적인 치유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매일의 자기 비움, 성령께 마음을 여는 작업, 우리의 상처 나고 곪은 부위를 감추지 말고 보여드리는 솔직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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