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1일 연중 제15주일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루카 10,25-37)
“Teacher,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Jesus said to him,
“What is written in the law?
How do you read it?”
He said in reply,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being,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He replied to him, “You have answered correctly;
do this and you will live.”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계명과 율법의 완성인 사랑
-배광하 신부-
이런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할머니 답,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로!” 할머니 대답,
“평생 웬수!”???
우리가 안고 있는 슬픔은 저 멀리 외계의 것도 아니오, 타지방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나 집안 식구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아픔이요, 상처인 것입니다. 너무 자주 부딪치며 살아야 하기에 그 상처에 대한 치유가 그토록 어렵고 슬픈 것입니다. 특별히 집안 식구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마태 10, 36)고 하셨을까요.
성 요한 베르크만은 세상을 떠나기 전 이같이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수도 생활에서 가장 큰 극기는 형제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성인조차도, 그것도 일생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겠다고 약속한 수도자들이 수도원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다는 고백이 됩니다. 때문에 사랑의 사도인 성 요한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 20~21)
유다인의 오랜 경전인 탈무드에는 사랑에 대한 이 같은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열두 가지 강한 것이 있다. 그 첫째는 돌이다. 그러나 돌은 쇠에 의해 잘려지고, 쇠는 불에 녹아 버린다. 불은 물을 이기지 못하고 구름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구름은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그러나 바람은 인간을 불어 날리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공포에 의해 비참하게 위축된다. 그 공포는 술에 의해 사라진다. 술은 잠을 자면 깨어 버린다. 잠은 죽음만큼 강하지 않다. 그런데 그 죽음조차도 ‘사랑’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모든 율법과 계명의 완성인 위대한 사랑에 대하여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