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말이지만
저를 가만히 드려다 보면
나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는 슬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나고 나면 많이 부끄러워하기도 후회하기도 합니다. 사과도 하지만 그 사과가 너무 흔해져버린 듯해 의기소침할 때도 있습니다.
주변사람들로부터 떠받드는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가장 은근한 유혹이 바로 자기중심주의 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제들의 가장 큰 유혹이 될 수 있겠구나 한답니다.
신자들 중에도 독자(獨子)나 독녀(獨女)들이 보통 자기 자신의 감정에 더 몰입하는 이기주의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삶을 어려서부터 살아서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남을 배려하는 맘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형제자매들이 많은 집안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배려는 수년간의 갈등의 반복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본능적으로 익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이 체험하고 있듯이 사랑은 남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하고 성장합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덧셈 뺄셈을 할 줄 모르면 구구셈을 할 줄 모르듯이 말입니다.
결혼 한 지 한 4년 정도 된 어떤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아내로부터 느닷없이 이혼하자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4년동안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막말로 바람피운 것도 아니고 술독에 빠진 것도 아니고 재산을 탕진한 것도 아닌데,
성실하게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는가 하는 배신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하는 길 집에 들어가는 찰라 아파트입구에서 귤을 파는 행상으로부터 마지막 떨이라고 하며 귤 한 봉지를 팔아달라는 청년의 애원에 못 이겨 귤 한 봉지 들고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일주일동안 말을 서로 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남편은 말없이 귤 봉지를 싱크대에 올려놓고 안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다시 나왔습니다. 그 때 싱크대 쪽에서는 말없이 아내가 귤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남편은 순간적으로 스스로에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내에 대해 너무 무심하게 살아온 4년, 아내에 대한 배려 없이 살아온 4년을 느낀 것입니다.
이 부부는 연애결혼 했습니다. 결혼 전 아내가 귤을 너무 좋아해서 종종 귤을 사주었습니다. 그 모습에 행복해 했고 귤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4년 동안 아내가 좋아하는 귤을 단 한 번도 사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내는 속도 모르고 드디어 남편이 변했구나 하고 맘이 풀려서 맛있게 귤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자들의 흔한 유혹중의 하나는 결혼과 함께 아내는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내 것은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은연중에 배어있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배우자가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는 증오로 변하기도 합니다. 결혼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고 그 시작은 어느 한 쪽의 지배가 아니라 동등한 인격이 서로에 대한 배려로 이해로 일치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일치 이것은 공동체 화목과 사랑의 필수조건입니다.
본당사제가 본당 신자들을 배려할 때, 신자들이 본당 신부를 배려하려 노력할 때,
남편이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줄 때, 아내가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줄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이해하려 노력할 때,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배려할 때 사랑을 거기에서 싹트고 성장하고 서로 일치를 이룰 것입니다.
5-3=2 이고 2+2=4입니다. 오(5)해도 세 번(3)생각하고 생각하면 이(2)해가 되고 이(2)해에 이(2)해를 더하면(+)사(4)랑이 됩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한 분이신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이해되는 논리가 아니기에 이것을 따지는 것은 포기하고 의미면에서 생각해 봅시다.
성가정이라는 한 단어 안에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자식의 일치가 필연적이듯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고백은 사랑과 일치의 완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한 분 하느님께서는 각각의 독립된 위격으로 완벽하게 일치와 사랑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우리 삶으로 가져오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우선적으로 배려하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이기주의 용납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삼위일체대축일은
나의 이기심, 나의 편리만 추구하는 욕심을 버리라는 가장 강력한 촉구의 축일입니다.
나보다는 너라는 단어가 더 아름답고 너 라는 단어보다는 우리라는 단어가 훨씬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우리를 즉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일치 안에 잠기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한 분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 각각의 위격을 이루며 일치를 이루듯이 우리는 각각의 인격을 가지고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각각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일치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 부디 제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제가 이 세상의 욕망에 죽게 해주시고, 사람들과 일치를 위해 제가 굴욕에 길들이게 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