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0/15)

2004. 10. 15. 오후 11:58:25

글자

2004년 10월 8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재생 클릭!!


제1독서 에페소 1,11-14
형제 여러분,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맨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 루가 12,1-7
그 무렵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서로 짓밟힐 지경이 되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하고 말씀하셨다.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말한 것은 모두 밝은 데서 들릴 것이며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나의 친구들아, 잘 들어라.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겠다. 그분은 육신을 죽인 뒤에 지옥에 떨어뜨릴 권한까지 가지신 하느님이다. 그렇다.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이다.
참새 다섯 마리가 단돈 두 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런데 그런 참새 한 마리까지도 하느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 두셨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그 흔한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세 명의 왕자를 둔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들자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신하를 시켜 양쪽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 길 위에 가짜로 만든 큰 바위를 놓으라고 명령했어요. 그리고는 왕자들을 차례로 불러 이웃 나라에 있는 대신에게 밀서를 황급히 전하라고 시켰지요.

며칠 후 그들이 모두 돌아오자 밀서를 어떻게 전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첫째는 큰 바위 위를 기어서 지나갔다고 말했고, 둘째는 길을 돌아서 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막내 왕자는 큰 길로 달려갔다고 말합니다. 임금은 막내 왕자에게 물었습니다.

“큰 바위로 길이 막혀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떻게 큰 길로 달려 갈 수가 있었느냐?”

“힘을 줘서 힘껏 밀었더니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걸요.”

“어떻게 큰 바위를 밀어 볼 생각을 했느냐?”

“바위가 눈앞에 있으면 밀어 보는 것이 당연하지요.”

결국 왕위는 누구에게 주어졌을까요? 바로 이 막내 왕자가 왕위를 잇게 되었답니다.

우리의 삶 안에는 많은 문제와 시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와 시련은 내 삶을 크게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와 시련은 어쩌면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짜 바위’는 아닐까요? 힘을 줘서 힘껏 밀면 넘어져 없어질 것들을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면서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미리 단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 저 역시 이렇게 단정하면서 살았던 적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와 시련을 헤쳐 나가기 위해 도전하기 보다는, 얼마 안 되는 나의 경험을 가지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너무나도 쉽게 포기를 했었습니다.

올해 초, 저는 이곳 갑곶성지에 와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춥기도 했고, 이제까지 편안한 생활을 하다가 모든 것을 저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힘들었지요. 그런데 특히 힘들었던 것은 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이 큰 땅에 저 혼자 있다는 외로움. 캄캄한 밤, 아무런 소리 없이 적막감이 맴도는 이곳에 혼자 있다는 외로움은 저에게 또 하나의 두려움으로 다가왔지요.

이런 외로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새벽 6시에 ‘따다다다다~~’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2월이었으니까 얼마나 어두웠겠어요. 그렇게 어두운 새벽에 요란하게 울리는 그 소리는 저를 깜짝 놀라게 했지요. 그런데 이 소리가 매일 새벽 6시면 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깜깜한 어둠을 헤쳐서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더군요. 괜히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며칠 만에 그 소리를 냈던 범인을 찾았습니다. 바로 성지의 십자가 위를 열심히 쪼아대는 딱따구리였던 것이지요. 별 것도 아닌 것을 그 소리만 듣고 괜히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외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두려워했던 우리들은 아니었나요? 또한 그 외적인 것을 밀쳐서 없앨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아니었나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다 세어 두고 계신다면서 주님께 의지하면서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 앞에 놓여있는 문제와 시련의 바위를 힘차게 밀어봅시다. 분명히 밀려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문제와 시련의 바위는 다 ‘가짜 바위’이거든요.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맙시다. 용기를 주시는 주님께서 바로 옆에 계십니다.



행복 연습하기(좋은 글)

당신이 얼마만큼 행복한가 하는 것은 인생관에 따라 다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무언가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솟아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꾸준한 연습에 의해 늘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5분간이라도 의식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하도록 하십시요.
어떠어떠한 이유로 행복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행복한 기분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의 일을 떠올려보도록 하십시요.
그리고 그때 당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상기해 보고, 그때의 기분을 다시 한 번 체험해 보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계속하다보면 당신은 행복해지고 싶을 때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고, 매일매일을 보다 행복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은 자존심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책임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도 있겠지만, 결국 행복은 당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결코 세상속에 있는것이 아니랍니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것도
입으로 말할 수 있는것도
두 귀로 들을 수 있는것도 아니라 합니다.

어느 누가 영원히 불행하다, 또한 영원히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가슴안에 살아서 내가 불행하다 생각하면 한 없이 불행해지는 것이요,
행복하다 생각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 작은 생각의 차이가 두 갈래의 길을 걷게 합니다.

남을 이기는 사람이 강하다 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그가 가장 강한 사람이라 말합니다.

행복은 결코,세상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변함없이 머물고 있는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미사/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