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0/13)

2004. 10. 14. 오후 1: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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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3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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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갈라디아 5,18-25
형제 여러분,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육정이 빚어 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 루가 11,42-46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십분의 일을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 사람들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닌다."
이때 율법 교사 한 사람이 나서서 "선생님, 그런 말씀은 저희에게도 모욕이 됩니다."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 놓고 자기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





어제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신학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신부님, 이거 아세요? 글쎄 내일 최저기온이 10도래요. 그리고 내일 모레는 7도래요.”

이 말에 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사실 조금 기대가 되었답니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너무나 추워서 몇 가지 겨울 용품을 구입했거든요. 오리털 침낭과 온풍기. 이 두 가지로 이번 겨울을 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하는데, 요즘 계속 날씨가 무더우니 테스트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추워진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어젯밤 저는 추워지는 날씨에 대한 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침낭 안에 얇은 담요를 넣었고요, 잠옷으로 입는 체육복 위에 두꺼운 옷도 껴입었습니다. 또한 추우면 언제든지 켤 수 있도록 온풍기도 잠자는 곳 옆에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 이루었다’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더운 것이었어요. 생각보다 침낭의 성능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다가 침낭 안에 있는 담요를 빼고, 두꺼운 옷을 벗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저는 또 깨고 말았습니다. 글쎄 추워지면 없어져야 할 모기가 저를 또 문 것입니다. 더워서인지 침낭 밖으로 저의 몸이 나와 있고요, 이렇게 방치된 상태에서 모기한테 물린 것이었지요.

모기한테 물렸다는 사실은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사는 모기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방 안의 온도계를 보면서 다시 놀랐습니다. 오늘 최저기온이 10도라고 했는데, 제 방 온도는 20도인 것입니다. 어제보다 겨우 1도 떨어진 것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기상청에서 말하는 최저온도는 방 안의 온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즉, 실내 온도가 아니라 실외 온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10도, 7도라는 말 자체에 깜짝 놀라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지요.

숫자만 생각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던 제 모습에서, 외형적인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 외형적인 모습이 정작 아무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이런 측면에서 주님께서 우리들 앞에 직접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모습에 진정한 희망이 있기에 그 희망을 쫓아서 열심히 살라는 의미는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글쎄 “화를 입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자그마치 4번씩이나 하십니다.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초대를 받으신 자리에서 이런 험담을 하실까요? 사실 초대를 받으면 그 초대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기에 약간의 나쁜 점도 좋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십니다.

바로 겉만 그럴싸하게 만들고 있는 그들의 위선에, 잘못된 것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우기면서 하느님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 그들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외형을 결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남의 눈만을 바라보면서 살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었는지요?

외적인 모습을 가꾸기 보다는 내적인 모습을 가꾸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실내온도는 20도라도 꽤 추워졌습니다. 따뜻하게 입고 외출하세요.



마음 가꾸기(이원조 ‘마음속 길들이기’중에서)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꾸겨진 이불을 들고 동네 모퉁이 구멍가게에 분유를 사러 왔다. 분유통을 계산대로 가져가니 주인은 7불 69센트라 말한다.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 엄마 뒤로 가게 주인은 분유통을 제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러다가 분유통을 슬며시 떨어뜨린다. 주인은 아이엄마를 불러 세우고 찌그러진 분유통은 반값이라 말한다. 4불을 받고 20센트를 거슬러 준다. 아이엄마는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분유를 얻었고 가게 주인은 3불 89센트에 천국을 얻었다.

정말 멋진 거래다.

사람의 참된 아름다움은 생명력에 있고, 그 마음 씀씀이에 있고, 그 생각의 깊이와 실천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맑고 고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눈은 맑고 아름답습니다. 깊은 생각과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밝고 지혜로운 빛이 느껴집니다.

녹슬지 않은 반짝임이 그를 언제나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옳은 일이라면 묵묵히 하고야 마는 사람에게서는 큰 힘이 전해져 옵니다. 강한 실천력과 남을 헤아려 보살피는 따뜻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눈을 닮고 누구의 코를 닮은 얼굴보다 평범하거나 좀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맑고 지혜롭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 만나면 만날수록 그 사람만의 향기와 매력이 느껴지는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할 사람들일 것입니다.

내면을 가꾸십시오.

거울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십시오.

내 마음의 샘물은 얼마나 맑고 고요한지, 내 지혜의 달은 얼마나 둥그렇게 솟아 내 삶을 비추고 있는지,

내 손길 닿는 곳, 발길 머무는 곳에 어떤 은혜로움이 피어나고 있는지,

내 음성이 메아리치는 곳에, 내 마음이 향하는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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