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0/14)

2004. 10. 14. 오후 2: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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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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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페소 1,1-10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오로가 그리스도 예수를 진실하게 믿는 에페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부한 은총으로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복음 루가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고 있다. 그렇게 해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소행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또 그 소행을 두둔하고 있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무덤을 꾸미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가 '내가 그들에게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대는 창세 이래 모든 예언자가 흘린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잘 들어라. 아벨의 피를 비롯하여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살해된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너희 율법 교사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렸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예수께서 그 집을 나오셨을 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몹시 앙심을 품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예수의 대답에서 트집을 잡으려고 노리고 있었다.





한 나그네가 도시를 찾아서 도보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도시를 찾기가 쉽지 않았지요. 드디어 그는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멀리 도시의 건물들이 바라보이는 갈림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저 도시로 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한쪽 길은 걷기가 쉬워 보였고요, 또 다른 길은 자갈길인 것으로 보아 걷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바로 그 때 그 갈림길 옆에서 놀고 이는 소년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에게 어느 길로 가야 저 도시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양쪽 다 도시로 가는 길이에요.”

소년의 말을 듣고 나그네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어느 길로 가면 더 빨리 저 도시로 갈 수 있지?”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이쪽 길은 짧고도 멀고, 이 길은 멀고도 짧아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이 그 소년의 놀이를 방해하는 것 같아서 ‘어느 길로 가든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겠지.’라는 생각으로 편해 보이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은 걷기가 편했고요, 그대로라면 시내에 금방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내를 바로 코앞에 두고 갑자기 길이 끊기고 말았어요. 널따란 하천과 과수원으로 길이 막혀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하는 수 없이 갈림길까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놀고 있는 소년에게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이 길이 짧다면서?”

“예, 하지만 제가 멀다고도 했는데요?”

나그네는 그제야 알 것 같았어요. 짧고 편해 보이는 길이 더 멀 수도 있고, 험해 보이는 길이 때로는 더 짧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결국 그는 험해 보이는 다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 힘들었지요. 하지만 그 길은 아무런 막힘없이 도시까지 나그네를 인도했습니다.

우리들의 눈앞에도 이런 갈림길이 놓여 있습니다. 즉, 짧고도 먼 길 그리고 멀고도 짧은 길이라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 세상의 옳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짧은 길입니다. 하지만 이 길에 들어서면 주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반대로 이 세상의 옳은 일들은 바로 먼 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먼 길을 선택한 우리들을 어리석다고 흉볼 지도 모릅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주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훨씬 짧은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해서 심한 꾸중을 던지시고 계십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상당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키기 힘든 그 많은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던지시는 꾸중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짧은 길만을 선택하는 그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속으로는 위선과 이기심으로 주님과 점점 멀어지는 길을 가고 있기에 그토록 심하게 꾸중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세상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그 멀어 보이는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그 짧아 보이는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선택은 여러분 손에 달렸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신중히 생각합시다



두 개의 꽃병(좋은 생각, 1999년 11월호 중에서)

영국의 조지 왕은 형인 앨버트 빅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급히 왕위를 이어받은 뒤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막중한 책임감과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은 긴장된 생활에서 오는 불안으로 몹시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작은 소도시의 한 도자기 공장에 들르게 되었다. 평소 도자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는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공장을 둘러보았다.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안내된 그는 잘 만들어진 도자기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두 개의 꽃병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두 개의 꽃병은 같은 원료와 같은 타일을 사용하여 무늬까지 똑같은 것이었는데,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 모양을 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하나는 투박하고 볼품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이 공장장에게 물었다.

"두 개의 꽃병이 같은 원료로 만들어졌지만 그 느낌이나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 다르오. 하나는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졌으니 이곳에 전시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하나는 이곳에 두기엔 형편없는 것 같소.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두 개의 꽃병을 나란히 두는 것이오?"

왕의 물음에 공장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또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하며 무엇보다 아름답게 합니다. 저 두 개의 꽃병을 나란히 이곳에 전시해 둔 것은 그런 뜻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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