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언자적 정신
예수님의 명성과 업적의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이제는 헤로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그 소문을 듣고 당황한다. 자신이 지은 죄 때문이다. 그는 부정한 죄를 지었고 그것을 계속 지적한 요한을 죽인 것까지 항상 마음에 부담을 갖고 있는데 예수님의 소문은 그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헤로데는 “내가 목을 벤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였는데, 그것은 세례자 요한을 죽인 죄책감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지 악을 행하면 온 세상이 자기를 의심하는 것같이 생각이 든다. 마음에서 그 악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생각이 나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되미치게 마련이다. 그리고 비난받는 것이 자기 자신임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게되고 그 악행의 결과가 자신에게 달라붙어 공포로 몰아넣는 불안에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에 자기가 죽인 세례자 요한이 자기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왕의 잘못에 대해 자신의 위험을 생각지 않고 끝까지 지적할 수 있었던 그분의 예언자적 정신과 자세이다. 예언자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항상 하느님의 뜻을 전한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들은 항상 진리 편에서 그것을 증거했기 때문에 항상 박해를 받았고 죽임을 당해 왔다. 그래도 그 예언자적 정신은 항상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 예언자적 삶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계승해야 한다. 이것은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되지 않는 것이다.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들이 바라고 기다리고 있던 엘리야라고 알기도 하였고, 예언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아마 예수님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로마의 억압에서 해방하여 자유를 주고 세계를 지배할 승리를 가져다 줄 정복자로서 예수님에게서 엘리야로 생각할 수도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면서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능력과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엘리야를 무한히 능가하시고 예언자들을 능가하시는 분이시다. 하여간에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기도와 신앙 안에서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그분이 누구시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죄를 짓고 쫓기는 마음으로 헤로데처럼 말할 것인가? 군중들처럼 현세를 위한 해방자인가? 아니면 진실한 믿음 안에 생명의 주님으로 대하고 있는가? 세례자 요한의 자세를 본받고, 주님을 우리의 참 구세주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대하고 모시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하고 우리의 삶을 봉헌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Re:헤로데의 불안 (2/4)
2005. 2. 4. 오전 9: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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