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의 불안 (2/4)

2005. 2. 4. 오전 9:49:27

글자
독서 : 히브 13,1-8
복음 : 마르 6,14-29

그때에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그 소문이 헤로데 왕의 귀에 들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더러는 엘리야라고도 하고, 또 더러는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소문을 들은 헤로데 왕은 “바로 요한이다. 내가 목을 벤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이 헤로데는 일찍이 사람을 시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그것은 헤로데가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였다고 해서 요한이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누차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것은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여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간할 때마다 속으로는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기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디아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 왕이 생일을 맞아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요인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나와서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매우 기쁘게 해주었다. 그러자 왕은 그 소녀에게 “네 소원을 말해보아라. 무엇이든지 들어주마” 하고는 “네가 청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겠다. 내 왕국의 반이라도 주겠다” 하고 맹세하였던 것이다. 소녀가 나가서 제 어미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고 의논하자 그 어미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여라” 하고 시켰다. 그러자 소녀는 급히 왕에게 돌아와 “지금 곧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그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은 곧 경비병 하나를 보내며 요한의 목을 베어 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감옥으로 가서 요한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네자 소녀는 다시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 그뒤 소식을 들은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장사를 지냈다. (마르 6,14­-29)

헤로데의 불안

헤로데 왕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기보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자신을 위해 살아간 사람으로 보입니다. 사도행전 12장 20절 이하를 보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조카인 헤로데 아그리빠는 자신의 연설을 듣고 사람들이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다’라고 외치는 것을 듣고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천사가 곧 헤로데를 내리쳐 죽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역시 얼마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모든 것을 소유하고도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이겠지요.

또한 그는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에 심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사실 악한 일을 하면 온 세상이 자기 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마음속의 악행을 지워버릴 수도 없으니 얼마나 불안할까요. 그의 불안이 저에게까지 전해져 옵니다. 공포로 몰아넣는 불안 속에 있으니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헤로데는 요한이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헤로데처럼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뭘 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반면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일을 위해서 살고 그 일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결코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부활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겠지요. 결국 세례자 요한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당하게 될 예수님의 삶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김 미카엘 부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미사/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