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둔 채 예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저어가자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그렇게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마르 4,35-41)
오늘 복음과 독서는 믿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1독서인 히브리서는 이 믿음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준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다면 주님께 순종할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된 땅으로 하느님께서 떠나라고 했을 때도 믿음으로 순종했으며, 아내인 사라 역시도 믿음이 있었기에 아이를 가질 수 있었고,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도 아브라함은 기꺼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좀 더 확장시켜서 이제는 그분의 말씀에 사람이 아니라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분이 주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한층 더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며 이러한 믿음앞에서는 모든 것들이 순종한다는 진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신앙인들도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믿음이 부족하여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의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복음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바로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될 수 있음을 완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게 정말 예수님께 대한 믿음,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 역시도 기꺼이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해 우리는 인간적으로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약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약한 우리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전 한때 베스트 셀러였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 책의 머리말에 보면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믿는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관심을 가진 무언가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질수록 그것의 진가를 더 깊이 보게 되고, 그것을 본 만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하고 우리에게도 바로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진정한 예수님의 진가를 보게 되고, 그러한 체험을 통해서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박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그러한 예수님에 대한 살아있는 체험이 쌓이고 쌓여서 그 믿음이 굳건해지고 단단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있는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늘 그분께로 내 마음을 기울이는 삶을 살아갑시다. 바로 그 만남을 통해 진정한 믿음이 싹틀 수 있을 것입니다.
* 천주교 부산교구 토현성당 보좌 김병수 시몬 신부
